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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밤에 읽는 하이쿠2(2024) 바람에게 물으라 어느 것이 먼저 지는지 나뭇잎 중에 -소세키 쉰 살에 위궤양 악화로 세상을 떠나며 쓴 시다. 소세키는 도쿄의 단골 병원에 갔다가 병원장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위중한 자신보다 먼저 떠난 것을 두고 어느 잎이 먼저 질지 아무도 모르니 바람에게라도 묻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 나뭇잎이 먼저 질지 나무에게 묻지도 나뭇잎에게 묻지도 않았다 나뭇잎을 흔드는 건 바람이므로 바람에게 물으라고 한 것일까... 만약 나무에게 물어본다면 '때가 되면'....이란 답변을 들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아니아니 누가 알겠는가? 저 그러고 싶어 그러는 것을... 2024. 11. 8.
늦가을 밤에 읽는 하이쿠(2024) 그가 한마디내가 한마디가을은 깊어 가고             -교시부산서 친구들이 찾아왔다.점심을 먹고  2층 다락 서재에서 가을 들녘을 바라보며 커피잔을 앞에 두고 앉았다.드립으로 내린 커피향이 코끝에 닿자 몸속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한 모금의 커피와 풍경...그러고는 너도 한마디,나도 한마디, 담소를 나누었다. 깊어 가는 가을처럼우리들 이야기도 깊어 갔다. 가을을 닮아 가는 삶에 대해한강 작가 작품에 대해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해석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비로소  이해한 것들에 대해...그리고그동안 잘해왔던 일과의 멀어짐, 무심함을 반성하면서새로운 다짐을 가을 속에 콕콕 박아 넣었다. 친구들은 떠나고아직도 공기 중에 맴도는 말이 있어나는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하였다.가볍게 아주 가볍게~마침 2.. 2024. 11. 7.
나를 만나는 시간 비가 옵니다 책을 읽으려고 앉았지만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선은 자꾸 엉뚱한 곳에 가 있습니다 책을 향하지 않고 마음 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마음에도 내립니다 차갑고 시린 겨울비가 내립니다. 투둑 투둑 후두둑 일정한 음률로 고요를 깨우고는 빗소리들로 세상을 꽉 채웁니다. 어느새 내 마음과 머릿속에도 빗소리가 가득 들어찹니다. 그것은 흘러흘러 마음 저 밑바닥까지 훑고 지나갑니다. 말이 되지 못해서 울음으로 채워졌던 지난 시간들... 도저히 알 수 없지만 일어난 일들의 잔해들이 그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더는 나를 휘두르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끔씩 그곳이 위태로울 때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죠. 산다는 게 뭘까요?... 마치 뒤로 걷는 것처럼 풍경과 시선은 앞에 있는데 몸은 .. 2024. 1. 21.
겨울밤에 읽는 하이쿠(24.1월) 길고 긴 한 줄기 강 눈 덮인 들판 - 본초 강둑을 따라 걸었다. 강가 억새의 흐느낌을 다 받아주는 듯 겨울강은 제 가슴을 열고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긴 강줄기를 따라 들판은 차라리 하얀 눈으로 덮여 있으면 좋으련만 알 수 없는 슬픔으로 일렁였다. ...너에 대한 마음에서 언제쯤 놓여날까?... 언제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떤 말은 말이 되지 못해 눈물이 된다고 했던가... 터져 나오려는 말들과 뱉어낼 수 없는 말들이 엉키어 꺼억꺼억 소리만 토해내었다. 그렇게 가슴 속에는 소화되지 못한 말들이 심장을 후벼팠다. 그랬다... 한 번도 감춰두었던 감정을 쏟아낸 적이 없었다. 그저 눌러두고 잠재우기 바빴다. 도망가고 회피하는 게 최선임을 알았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살았다... 2024. 1. 15.
서암정사의 봄날 함양군 마천면에 위치한 서암정사는 멀리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고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유명한 칠선계곡을 마주하고 있다. 그야말로 천혜의 절경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많은 사찰을 보아왔지만 입구에서부터 온통 마음을 빼앗거버린 것은 서암정사가 처음이었다. 계절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요한 산사에 발을 들인 순간 온 세상이 꽃으로 환해지는 열락에 들었으니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봄날이었다.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두루 갖춘 서암정사는 단번에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고 숨바꼭질하듯 지리산에 펼쳐진 화엄의 세계로 나를 서서히 끌어들였다. 마치 꽃에 정신이 팔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주한 꿈결 같은 곳, 돌기둥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돌담길을 따라 길을 안내하는 등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석굴을 지나.. 2022. 4. 29.
딸기 수확 체험 체류형 동기 중 아이 아토피 때문에 함양에 귀농해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 여동생이 있다고 했다. 그녀의 소개로 다섯 명이 우르르 딸기 하우스엘 가게 되었다. . 소개를 한 그녀는 딸기밭 주인과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남편 분은 퇴직을 했고 아내 분은 학교 선생님인데 두 분이서 딸기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함양읍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주인은 없었고 개 세마리만 우리를 반겼다. 주인은 딸기밭 지킴이로 묶어 놨을 텐데 짓지도 않고 낯선 사람을 보고도 좋아 꼬리만 흔들어 대는 순한 애들이었다. 각자 만원만 내고 10kg를 따가면 된다고 했다 좋은 건 다 수확하고 남은 볼품 없고 맛이 떨어지는 끝물의 딸기이겠거니 했다. 그냥 주스나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딸기밭에 들어선 순.. 2022. 4. 20.
봄에 읽는 하이쿠(2022) 노란 유채꽃 확 번져서 환해진 변두리 동네 -시키 함양에 온 지 두 달이 되어간다. 농촌 경험과 농업 교육을 겸한 1년 살아보기 체류형 함양살이를 하면서 부산을 오가고 있다. 처음 이곳에 신청서류를 넣고 면접심사를 위해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2월이었다. 마른 풀과 나뭇가지를 흔들어대던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부여잡고 휑한 눈으로 이곳을 둘러봤던 기억이 난다. 겨울의 삭막한 풍경만큼 마음도 을씨년스럽고 서걱거렸다. 그런데 봄이 되면서 이곳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참새 혓바닥 같은 연둣잎이 돋고 여기저기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초록과 꽃이 확 번져서 변두리까지 환해졌다. 그래서인지 시키의 하이쿠는 그림 한 폭이 되어 마음 속으로 훅 들어왔다. 세 줄의 글이 그림이 되는 순간, 더욱 명징하게.. 2022. 4. 19.
겨울밤에 읽는 하이쿠(22.1월) 눈에 부러진 가지 눈 녹여 물 끓이는 가마솥 아래 -부손 부산엔 눈이 잘 오지 않는다. 눈을 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하지만 어릴 적 강원도에서 자란 나는 지겹도록 눈과 뒹굴며 살았다. 게다가 방학만 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경상북도 봉화군 봉성읍 남면.... 도로가 없어 십 리나 되는 길을 걸어야 나오는 오지 마을엔자주 눈이 내렸다. 하얗고 탐스런 함박눈이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곤 했었다.아침에 일어나 보면 밤새 내린 눈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처마끝에는 며칠 째 녹지 않은 고드름이 달려 있고우물은 얼어 물을 구하지 못할 때,할아버지는 커다란 가마솥에 눈을 퍼 담고는 불을 지폈다. 지금 가만히 떠올려 보면 시골의 겨울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눈의 .. 2022. 1. 10.
12월에 읽는 하이쿠 (2021) 고요함이여 호수의 밑바닥 구름의 봉우리 -잇사 겨울 풍경 속을 걷는다. 바람은 차고 공기는 맑다. 가볍게 부는 바람에는 제 몸을 일렁이지 않는 호수는 물의 무늬 만으로 가장자리까지 꽉 채운다. 고요하다. 호수의 밑바닥까지도 고요한지 산도 하늘의 구름도 온전히 담아낸다. 내 마음도 겨울의 호수 같이 고요했으면 좋겠다. 어떤 일렁임도 의심도, 계산도 없이 모든 것을 온전히 그대로 다 담아내면 좋겠다. 겨울의 물 나뭇가지 하나의 그림자도 속이지 않고 -구사타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물속이나 산의 높이는 끝이 있어 잴 수가 있지만 사람의 속은 형체도 없고 정함이 없으니 그 속을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언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 놓고 풍덩 빠져보지만 금세 얕아진 .. 2021.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