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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의 가을을 걷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삼불사찰 중 하나로 가람의 규모나 오랜 역사로도 유명하지만 소나무길도 빼놓을 수 없다. 통도사에 가기 위해서는 걷든지 자동차를 이용하든지 둘 중 하나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은 계곡물을 따라 이어진 '무풍한송로' 다. 등이 굽은 노송과 하늘로 곧게 뻗은 늠름한 소나무, 비바람에 못 이겨 휘어져 구불거리는 소나무들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서로의 어깨를 맞대거나 가지를 붙잡고 오랜 세월을 견뎠을 고고한 기품이 서려있다. 소나무는 대부분 위는 적갈색을 띠고 있고 아래 부분은 흑갈색을 띠고 있다. 소나무길의 또 다른 특징은 수많은 이름이 새겨진 바위들이다. 집채 만한 큰 바위부터 작은 바위에까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에서부터 이름 없는 기생에까지 다양하다. 통도사를 방문하였던 사람들.. 2021. 11. 23.
청사포 북청화첩 모노레일청사포역에서 건널목을 건너면 벽면에 강아지 벽화가 있는 건물을 만나게 된다. 낡고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갤러리카페로 운영 중이다. 북청화첩! 깊은 청록색인 북청색 화첩이라니.... 건물의 지붕이나 문 뿐만 아니라 바다도 북청이다. 푸른바다를 화첩삼아 청사포 해안을 따라 자리잡은 모든 것이 그림이 되는 곳이다. 북청화첩, 이보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차 한잔 시켜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내키면 그림도 그릴 수 있다. 색을 입히든 입히지 않든 자유다. 어떤 형식에도 매이지 않는... 청사포에는 해녀할머니가 살고 있다. 소라나 멍게, 해삼, 돌미역을 따서 난전에 앉아 팔기도 한다. 마침 이곳 마을에 사는 한 할머니가 소장한 물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2021. 11. 15.
해운대 송정 솔밭공원 해운대 송정 솔밭공원은 해변 끝자락에 작은 섬처럼 봉긋하게 솟아 있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곰솔, 동백, 사철나무와 키작은 관목들이 서식하는 아담한 숲이다. 측면에서 보면 송정해변과 해변을 끼고 줄지어 서 있는 건물들이 보이고, 산책길을 따라 쭉 가면 공원의 중간 지점인 곳에 팔각정이 드넓은 바다를 보며 서있다. 맑고 화창한 날이면 먼 바다 너머로 수평선이 또렷하게 보인다. 수평선을 타고 푸른빛이 하늘가로 점점 번져간 듯 세상은 온통 푸른색의 그라데이션으로 풍부함과 깊이를 지녔다. 다 같은 푸른색이 아닌듯... 미묘한 차이를 쫓는 시선에도 즐거움이 담긴다. 암벽에는 보라빛 해국이 여기저기 한아름씩 피어 있다. 어디를 바라보든 한 폭의 그림이다. 2021. 11. 11.
가을산, 맨발로 걷다 요즘 가을산은 울긋불긋 그야말로 색의 잔치다. 그리고 온갖 소리들로 가득하다. 바람결에 나뭇잎들이 쓸리는 소리, 쏴아 쏴아~ 이제 막 나뭇가지의 손을 놓아버린 마른 잎들이 하염없이 떨어진다. 여기 저기서 툭, 투둑, 툭 쌓인 낙엽 위로 떨어지면서 인사가 분주하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이곳이 나의 천국이로구나.... 여름부터 산길을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조심 조심... 느릿느릿... 맨발에 닿는 흙과 크고작은 돌멩이, 밖으로 나온 나무 뿌리, 낙엽의 감촉이 생생하다. 그때부터 변화가 찾아왔다. 걸음이 느려지다보니 풍경에 오래 머무르게 되었고 온갖 소리와 숲에서 나는 냄새에 민감해졌다. 오감이 열리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느낀다는 것, 그것은 향유다. 발가락 사이로 파고들던 부드럽고 따뜻한 흙은 11월.. 2021. 11. 8.
[책] 서른의 반격 ㅣ 손원평 장편소설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인 은 주인공인 지혜가 태어나던 1988년으로 시작한다. 보통사람을 외쳤던 전 대통령의 등장은 참으로 적절하게 소설의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권위와 권력, 허위와 부당함에 진짜 보통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고 얽혀 있는지 독자를 끌어들여 그 속에서 경험하게 한다. 이 소설에는 착취와 부당한 일을 겪은 네 명의 인물이 나온다. 대기업 DM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비정규직 인턴으로 일하는 서른 살의 지혜, 책과 강의로 유명한 박 교수에게 자신이 쓴 원고와 아르바이트비를 착취당한 규옥, 자신의 시나리오를 대기업에 도둑맞은 무명작가인 무인, 고생해서 만든 떡볶이 소스 비법을 빼앗긴 먹방계의 지존인 남은이 나온다. 우쿨렐레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된 네 사람은 술자리를 가지면서 .. 2021. 11. 6.
11월에 읽은 하이쿠2 국화가 나른하다고 말했다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헤키고토 6개월 만에 다시 블로그를 시작한다. 국화가 나른하다고,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니...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늦여름의 끝자락에 묻어 있는 더위를 견디고 선선한 가을 바람에 살 만도 하겠는데 나른하다고, 견딜 수 없다고 한 건 필시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데 일어나지 않는 무료함 때문인지도... 어쩌다 가끔 찾아오는 벌과 나비, 주변을 둘러봐도 외로이 꽃 피운 건 자신 뿐,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들이닥칠 것만 같은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있으니.... 견딜 수 없어... 삶이 너무 나른해.... 그래 그렇게 말이라도 하면 들어주는 이가 분명 있을 거야. 남은 생 얼마큼인가 밤은 짧고 -시키 친구 소세키에게 보낸 편지에 이 하.. 2021. 11. 3.
슬프고도 아름다운 봄날 나의 우주에서 빛나던 별들 중 하나인 이모가 빛을 잃고 스러져갔다. 뇌졸중으로 병원에 가신지 14일 만이다. 세상천지에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데 이모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슬픔도 날리고 벚꽃잎도 날렸다 방울 방울 떨어저내리는 눈물처럼 꽃잎은 무심히도 날렸다 언니를 잃은 엄마는 아무렇지 않다고 하시지만 마음속은 온통 얼룩져있다 눈물과 회환과 추억과 서러움으로... 웃음기가 사라진 한풀 꺾인 목소리에서 얼룩진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봄날이다. 봄날은 내게 아주 특별한 계절이다. 사계절 중에 가장 좋아하기도 하지만 가장 슬픈 계절이기도 하다 내가 사랑한 할머니, 아버지, 이모를 모두 봄에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월호의 아이들.. 그렇게 봄은 오고 봄은 그렇게 갔다. .. 2021. 4. 9.
3월에 읽는 하이쿠 보이는 곳마음 닿는 곳마다올해의 첫 벚꽃 -오토쿠니 파란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벚꽃을 보자마자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의 아몬드꽃이었다. 건물을 오려내면 파란하늘과 꽃만 남을 것이다. 이미지가 너무 닮은 풍경이다. 보통 남쪽 지방의 벚꽃 개화시기는 3월 중순쯤인데 벌써 벚꽃이 피다니 무슨 일일까?...봄이 되어도 벚꽃이 피고 진 것도 모른 채 봄을 보낸 적도 있고벚꽃이 언제 피나하고 기다리며 봄을 맞은 적도 있다.그런데 올해는 느닷없이 벚꽃이 피었다. 너무 때 이른 개화 앞에 어리둥절하다.올해의 첫 벚꽃이다.보이는 곳 마음 닿는 곳마다 기다리지 않아도 느닷없이 핀 벚꽃 때문에 기다리는 설레임보다 앞선 건 어리둥절이다.피어도 너무 많이 피었다.왜 그랬니?.. 꽃샘 추위에 질까 걱정된.. 2021. 3. 2.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감독의 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영화다.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로 모여들었던 과거의 예술가들을 만난다는 설정 뿐만 아니라 파리 곳곳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준다. 시간여행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로 많은 영화들이 나와있지만 과거 예술가들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더욱이 소설가를 꿈꾸는 길 펜더와 같은 인물이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T,S 엘리어스, 거트루드 스타인을 만났으니 거기다가 그들의 뮤즈인 아드리아나와의 꿈같은 로맨스라니... 꿈 같은 일이다. 는 한밤 중 파리에서의 꿈 같은 일을 그려낸다. 모더니즘과 댄디즘을 탄생시킨 예술과 철학의 도시, 파리는 영화 포스터에서처럼 고흐의 밤하늘과 현실이 만나는 곳, 누구나 꿈 꾸게 만드는 곳이다. 헐리웃에서 각본가로 잘 나가던.. 2021.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