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 내 맘대로 읽기64 초겨울 문턱에서 읽는 하이쿠20 첫눈 얹히네 올해 가지를 뻗은 오동나무에 - 야스이11월에 느닷없이 눈이 내렸다진눈깨비도 아닌 함박눈이 폭폭 쏟아졌다올해 가지를 뻗은 블루베리 나무에복숭아나무 사과나무에도...인간인 우리도 놀랐지만올해 가지를 뻗은 나무잎을 하나씩 떨구며 겨울 준비를 하던 나무들은 오죽했을까...느닷없어서 반갑기도 했지만 놀랍기도 한 첫눈,부디 놀란 그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봄눈 녹듯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2024. 11. 27. 가을에 읽는 하이쿠 19 이쪽으로 얼굴을 돌리시게 나 역시 외로우니 가을 저물녘 - 바쇼이 시가 씌여진 것에는 재미난 일화가있다승려 운치쿠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바쇼가 잠시 묵고 있던 교토의 환주암으로 찾아와 그 그림에 넣을 하이쿠 한 편을 부탁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시다위트와 다정함이 묻어난다얼마나 외로우면 고개를 돌리고 있는 그림 속 운치쿠를 향해 말을 걸까... 2024. 11. 25. 가을에 읽는 하이쿠18 가을바람 속 꺾고 싶어 하던 붉은 꽃 - 잇사이 시의 탄생은 이러하다잇사의 죽은 딸이 생전에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붉은색 꽃을 무척 좋아해 꺾고 싶어 했다고 한다잇사는 딸을 추억하며 이 시를 지었다가을만 되면 붉은 꽃은 딸의 모습으로 시인의 가슴속에서 피어났을 것이다누군가를 무언가를 추억하는 상징은 아주 소소하고 하찮을 수도 있다하지만 그 힘은 대단하다평생에 걸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슬픈 아버지...붉은 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우는 풀벌레 소리에도 목놓아 우는 슬픈 소리로 인식한 잇사의 마음이 쓸쓸히 전해져 온다이 가을밤에.... 2024. 11. 24. 가을에 읽는 한 줄 하이쿠17 시간, 공간, 이 나무 이곳에 시들다 - 산토카뿌리 내린 곳에서 자라고 시들어가는 나무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건 나무나 인간이나 별 차이가 없다태어날 시간과 시들고 죽는 시간은 알 수 없고...생활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반복 속의 공간은 잠시 빌려 쓰고 있다그리하여 지금 이 곳에서 시들고 있다 2024. 11. 23. 가을밤에 읽는 한 줄 하이쿠16 이렇게 좋은 달을 혼자서 보고 잔다 - 호사이혼자서 보기에 아까운 풍경을 볼 때면 누군가와 함께라면 얼마나 좋을까...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을 때도 그런 마음이 든다이럴 때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외롭구나.... 2024. 11. 22. 가을밤에 읽는 한 줄 하이쿠15 이 길 몇 사람 걸어간 길 나 오늘 걸어가네 - 산토카이미 길을 걸어간 사람지금 지나는 사람그리고 나중에 지나갈 사람이 있을길 위에서 시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예전의 길은 흙길이었다발자국이 찍히고 다져지는 일이 반복되며 길은 길어지고 넓어지며 복잡해졌다처음 길을 간 누군가의 발자국 위에다른 발자국이 겹치고 시간이 쌓이고흙먼지가 쌓이고이야기가 쌓이면서길은 나와 타인을 연결하고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잇는다오늘 걸어가는 이 길 위에비가 내리고낙엽이 쌓이고곧 눈도 내려 쌓일 것이다 길 저 끝에는 내 쪽을 바라보며 서성이는 너도 서 있다 2024. 11. 22. 가을밤에 읽는 하이쿠14 이 길 오가는 사람 없이 저무는 가을 -바쇼 저토록 아름다운 길을 걷는 사람이 없다니... 수백 년 된 은행나무는 노란 잎을 꽂처럼 환하게 피워내고 있는데... 시인은 고즈넉히 길을 바라보고 있다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데 가을은 저물고 있다 더욱 쓸쓸한 풍경 풍경마저 조용히 늙어 가고 있다 시인은 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건 우리의 풍경이기도 한 것을.. 2024. 11. 20. 가을밤에 읽는 하이쿠13 가을 깊은데 이웃은 무얼 하는 사람일까 - 바쇼 가을은 깊고 인적은 드문 마을에서 나와 관련되지 않은 이웃에 대해 생각한다 이 깊은 가을 이웃이 무얼하며 굶지는 않는지 건강은 어떤지 식구는 몇이나 되는지 느닷없이 많은 것이 궁금하다 하지만 시인은 '무얼 하는 사람일까'로 압축한다 무얼 하는 사람이길래... 나 또한 이웃에게 이런 궁금증을 가진 적이 있었다 유기견을 네 마리나 거두어 키우며 혼자 사는 남자... 나가는 직장도 없어 보이는데 네 마리나 되는 개들을 제대로 먹이고 돌보는 건지 의심과 걱정의 눈초리로 봤다 시인은 타인에 대한 관심에서 궁금했겠지만 나는 네 마리 개의 안전이 더 신경쓰여서 의심과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도대체 무얼 하는 사람일까... 2024. 11. 19. 가을밤에 읽는 하이쿠12 흰 이슬의 외로운 맛을 잊지 말라 - 바쇼아침에 일어나 보면 비가 온듯 땅도 촉촉하고 시든 풀잎에도 물방울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가을에 내리는 이슬이다이슬의 외로운 맛을 잊지 말라고 시인은 말한다아무 맛도 없고 냄새도 없어 무상한 이슬의 맛을 외로운 맛이라고 하였다외로운 맛...어울리지 못하여 따로 있는 맛가장 근본인 맛시인은 그 맛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원칙에 가까운 맛여러가지 맛을 알기 전에 가장 바탕에 있었던 맛근본이 되는 것들을잊지 말라는 삶의 지침처럼 다가오는하이쿠다 2024. 11. 18. 이전 1 2 3 4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