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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하이쿠5

12월에 읽는 하이쿠 (2021) 고요함이여 호수의 밑바닥 구름의 봉우리 -잇사 겨울 풍경 속을 걷는다. 바람은 차고 공기는 맑다. 가볍게 부는 바람에는 제 몸을 일렁이지 않는 호수는 물의 무늬 만으로 가장자리까지 꽉 채운다. 고요하다. 호수의 밑바닥까지도 고요한지 산도 하늘의 구름도 온전히 담아낸다. 내 마음도 겨울의 호수 같이 고요했으면 좋겠다. 어떤 일렁임도 의심도, 계산도 없이 모든 것을 온전히 그대로 다 담아내면 좋겠다. 겨울의 물 나뭇가지 하나의 그림자도 속이지 않고 -구사타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물속이나 산의 높이는 끝이 있어 잴 수가 있지만 사람의 속은 형체도 없고 정함이 없으니 그 속을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언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 놓고 풍덩 빠져보지만 금세 얕아진 .. 2021. 12. 28.
2월에 읽는 하이쿠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가 -산토카 마른 나뭇가지에 까마귀들이 날아와 까맣게 앉았다. 한 두마리 푸르륵 날갯짓을 하니 모두 함께 날아올라 밭가에 내려 앉는다. 바람은 차고 하늘은 맑다.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가' 이 한 줄의 시로 묻고 싶다. 너희들은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지.. 또 나는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지... 그러고보면 삶은 늘 길 위에 있는 시간들이었다. 무언가를 찾고자, 얻고자 헤매고 달리고 방황하며 보냈다. 하지만 가끔 멈춰서 되돌아보면 무엇을 찾아 길을 가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묻곤 한다.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가.... 다 알 수 없는 게 인생일까?... 올빼미여 얼굴 좀 펴게나 이건 봄비 아닌가 -잇사 우리 모두 얼어붙은 겨울이 너무 싫은 올빼미.. 2021. 2. 15.
1월에 읽는 하이쿠 밑바닥의 돌 움직이는 듯 보이는 맑은 물 -소세키 좋은 시는 명쾌하게 이해되는 시가 아니라 독자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창조되는 함의를 지닌 시이며 시적 순간으로 데려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소세키의 하이쿠는 시적 순간으로 데려가는 시라고 할 수 있다. 맑은 물 밑바닥의 돌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나 역시 경험한 적이 있다. 마치 물결 따라 돌이 흘러가는 듯한 돌이 물결이 되는 순간을 만난 것이다. 살면서 이러한 시적순간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보고 느껴야 하는데 우리는 사는게 바쁘다 는 이유로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보고 느낀다는 건 몸과 마음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일인데 우리는 불감증 환자처럼 아무런 감흥도 생각도 없다. 너무나 상식적이거나 단편적인 지식으로만 사물을 보고 판단하여 무심히 지나쳐.. 2021. 1. 4.
겨울밤에 읽는 하이쿠 쓸쓸함이밑빠진 듯 내리는진눈깨비여 -조소 눈 녹아온 마을에 가득한아이들 -잇사 자가격리 4일 째. 창밖으로 보는 겨울 풍경은 한없이 쓸쓸하다.하얀눈이 쌓이진 않았지만 세상은 온통 얼어붙어 있다.소박했던 삶도 일상의 자유도 사람들과의 만남도 일시정지된 상태로 겨울을 맞은 셈이다.고립되고 소통부재의 시간속에 갇혀뻥 뚫린 마음속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쓸쓸함을 견디고 있다.엄청난 일을 겪었을 때 대자연의 위엄 앞에 인간은 살기 위해, 미치지 않기 위해 웃음을 발명했다고 한다.웃어야 하나?...이 어이 없는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인간의 오랜 발명품인 웃음은 해결책이 되어줄까...다행이 남편은 경미한 증상을 보이고 있어서 낙담할 상황은 아니지만 쉽게 웃음은 나오지 않는다.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 수는 줄어들 기미를.. 2020. 12. 16.
12월에 읽는 하이쿠 겨울 밤 내 그림자와 함께 나에 대해 쓴다 -세이센스이 겨울은 낮보다 밤이 길어지는 계절이다. 예전에는 일찌감치 집에 들어박혀 할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사색에도 빠지기도 하고 쓸데 없는 생각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겠지만 읽을거리 볼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선 자신과의 대화나 성찰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관심과 시선은 늘 밖으로 향하거나 타인의 욕망에 맞추어 살다보니 나를 잃어버렸다. 연예인이나 타인에 대해선 이러쿵 저러쿵 잘 알면서 정작 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가십거리엔 침을 튀겨가며 말할 순 있어도 조금만 철학적 주제로 넘어가면 그 진지함을 견디는 힘이 없어 얼렁뚱땅 넘겨버린다.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2020.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