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의 돌
움직이는 듯 보이는
맑은 물
-소세키
좋은 시는 명쾌하게 이해되는 시가 아니라 독자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창조되는 함의를 지닌 시이며
시적 순간으로 데려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소세키의 하이쿠는 시적 순간으로 데려가는 시라고 할 수 있다.
맑은 물 밑바닥의 돌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나 역시 경험한 적이 있다.
마치 물결 따라 돌이 흘러가는 듯한
돌이 물결이 되는 순간을 만난 것이다.
살면서 이러한 시적순간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보고 느껴야 하는데 우리는 사는게 바쁘다
는 이유로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보고 느낀다는 건 몸과 마음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일인데
우리는 불감증 환자처럼 아무런 감흥도 생각도 없다.
너무나 상식적이거나 단편적인 지식으로만 사물을 보고 판단하여 무심히 지나쳐버린다.
그 이면을 바라볼 줄 아는 통찰과 심안을 가진 시인들은 사물을 섣불리 보지 않는다.
관찰하고 빚대어보고 발명하고 한 세계를 창조해 내기도 한다.
그냥 물과 돌로 보지 않고 물결인지 돌인지 구분할 수 없는...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를 물아일체와 같은 상황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고는
몰입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바로 시인이 아닐까 싶다.
시인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오래도록 맑은 물과 그 밑에 돌을 들여다보다가
그 순간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새해가 밝았다.
밑바닥의 돌처럼 유심히 들여다볼 일이 많아졌다.
시적순간을 만나지 않아도 좋으니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겨울 햇살이
지금 눈꺼풀 위에
무거워라
- 교시
천고마비의 계절은 가을이다.
그렇다면 겨울 하늘은 더 높을 것이다.
겨울 햇살이 더 멀리 높아진 하늘에서 눈꺼풀까지 오는 거리의 두께로 인해 무거운 것인지..
추운 날씨지만 따뜻하게 쏟아지는 햇살 탓에 졸음이 쏟아지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상상만으로 즐겁다.
졸리면 졸립다고 말을 할 일이지...
겨울 햇살이 지금 눈꺼풀 위에 무거워라고 둘러대는 시인이란 참....
얼마나 무거울까?...
겨울 햇살이 눈꺼풀을 내리 누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겨울 찬 바람
저녁 해를 바다로
불어 내리네
-소세키
저녁 무렵, 겨울 찬 바람이 해를 바다로 쓸어 내리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
바다로 지는 해를 시인은 바다로 불어 내린다고 표현하였다.
그나마 따뜻하던 해를 찬바람이 쓸어내리니 금세 식을 것 같은 느낌도 함께 전해져 온다.
해가 지는 저녁 무렵이면 기온이 더 내려가기 마련이다.
시인은 한 폭의 그림을 보여주듯 명징하게 그 뜻을 전달하고 있다.
겨울 저녁,
이제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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