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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쇼4

겨울밤에 읽는 하이쿠(22.1월) 눈에 부러진 가지 눈 녹여 물 끓이는 가마솥 아래 -부손 부산엔 눈이 잘 오지 않는다. 눈을 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하지만 어릴 적 강원도에서 자란 나는 지겹도록 눈과 뒹굴며 살았다. 게다가 방학만 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경상북도 봉화군 봉성읍 남면.... 도로가 없어 십 리나 되는 길을 걸어야 나오는 오지 마을엔자주 눈이 내렸다. 하얗고 탐스런 함박눈이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곤 했었다.아침에 일어나 보면 밤새 내린 눈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처마끝에는 며칠 째 녹지 않은 고드름이 달려 있고우물은 얼어 물을 구하지 못할 때,할아버지는 커다란 가마솥에 눈을 퍼 담고는 불을 지폈다. 지금 가만히 떠올려 보면 시골의 겨울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눈의 .. 2022. 1. 10.
11월에 읽은 하이쿠2 국화가 나른하다고 말했다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헤키고토 6개월 만에 다시 블로그를 시작한다. 국화가 나른하다고,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니...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늦여름의 끝자락에 묻어 있는 더위를 견디고 선선한 가을 바람에 살 만도 하겠는데 나른하다고, 견딜 수 없다고 한 건 필시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데 일어나지 않는 무료함 때문인지도... 어쩌다 가끔 찾아오는 벌과 나비, 주변을 둘러봐도 외로이 꽃 피운 건 자신 뿐,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들이닥칠 것만 같은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있으니.... 견딜 수 없어... 삶이 너무 나른해.... 그래 그렇게 말이라도 하면 들어주는 이가 분명 있을 거야. 남은 생 얼마큼인가 밤은 짧고 -시키 친구 소세키에게 보낸 편지에 이 하.. 2021. 11. 3.
겨울밤에 읽는 하이쿠 쓸쓸함이밑빠진 듯 내리는진눈깨비여 -조소 눈 녹아온 마을에 가득한아이들 -잇사 자가격리 4일 째. 창밖으로 보는 겨울 풍경은 한없이 쓸쓸하다.하얀눈이 쌓이진 않았지만 세상은 온통 얼어붙어 있다.소박했던 삶도 일상의 자유도 사람들과의 만남도 일시정지된 상태로 겨울을 맞은 셈이다.고립되고 소통부재의 시간속에 갇혀뻥 뚫린 마음속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쓸쓸함을 견디고 있다.엄청난 일을 겪었을 때 대자연의 위엄 앞에 인간은 살기 위해, 미치지 않기 위해 웃음을 발명했다고 한다.웃어야 하나?...이 어이 없는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인간의 오랜 발명품인 웃음은 해결책이 되어줄까...다행이 남편은 경미한 증상을 보이고 있어서 낙담할 상황은 아니지만 쉽게 웃음은 나오지 않는다.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 수는 줄어들 기미를.. 2020. 12. 16.
일요일 오후, 하이쿠를 읽다 이 시집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보자마자 샀다. 출판사에서 푼 게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로 완전 새책이었다. 그것을 반값에 샀으니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하이쿠에 대해서는 바쇼 정도만 알고 있던 터라 이 시집은 무엇보다 반가웠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제본상태, 편집, 류시화 시인의 해설, 중간 중간 들어 있는 그림 등 탄성이 나올 만큼 마음에 들었다.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바쇼 목욕한 물을 버릴 곳 없네 온통 풀벌레 소리 -오니쓰라 하이쿠의 매력은 짧지만 그림을 보듯 이미지가 선명하거나 의미의 확장성이 크다는 점이다. 7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맛있는 치즈 케이크를 아주 조금씩 떼어 눈을 감고 음미하듯 그렇게 읽고 있다. 바쇼의 하이쿠와 오니쓰라의 하이쿠는 여름.. 2020.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