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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내 맘대로 읽기

11월에 읽은 하이쿠2

by 나?꽃도둑 2021.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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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화가 나른하다고 말했다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헤키고토

 

 

6개월 만에 다시 블로그를 시작한다.

국화가 나른하다고,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니...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늦여름의 끝자락에 묻어 있는 더위를 견디고 선선한 가을 바람에 살 만도 하겠는데

나른하다고, 견딜 수 없다고 한 건 필시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데 일어나지 않는 무료함 때문인지도...

어쩌다 가끔 찾아오는 벌과 나비,

주변을 둘러봐도 외로이 꽃 피운 건 자신 뿐,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들이닥칠 것만 같은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있으니....

견딜 수 없어... 삶이 너무 나른해....

그래 그렇게 말이라도 하면 들어주는 이가 분명 있을 거야.

 

 

 

 

 

 남은 생

 얼마큼인가

 밤은 짧고

 

  -시키

 

친구 소세키에게 보낸 편지에 이 하이쿠가 실려있다고 한다.

병상에 누워서 자신에게 남은 생에 대해 생각했을 시키의 마음이 느껴지는 하이쿠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인에겐 낮도 짧고 밤도 짧다.

갑자기 단축된 시간은 저승사자처럼 서서 그를 내려다 보고 있을 것이다.

남은 생 얼마큼인가... 조금만 더 나를 늦게 데려가시게.

 

우리는 흔히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곤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디쯤에서 살고 있는지....

이 가을 올려다 본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기만 하다.

 

 

 

 

 말을 하면

 입술이 시리다

 가을바람

 

  -바쇼

 

바쇼는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입술이 시린 건 단지 찬 가을바람 뿐만 아니다

남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하는 입술 또한 가을바람처럼 차고 시린 것이다.

누구나 어쩌다가 남에 대해 뒷담화나 험담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자기 얼굴에 침뱉기와 같은 행위라는 것을...

뒷담화나 험담을 하고 남 탓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내면의 불안감, 열등감의 소유자들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생존방식에 가깝다.

말을 옮기고 뒷담화나 험담을 통해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기와 질투도 장착하고 있다.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하지만 자기 자신 만은 속이지 못 할 것이다.

 

남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말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입을 다물어야겠다.

여기서 가을바람은 남의 뒷담화나 험담일 것이다.

바쇼의 시처럼 그것에 대해 말하는 순간 입술은 차고 냉담해진다.

이 가을 해야할 일은 남을 살펴볼 것이 아니라 시선을 자기 쪽으로 돌려 내 안을 살펴볼 일이다.

내겐 허물이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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