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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내 맘대로 읽기

겨울밤에 읽는 하이쿠(22.1월)

by 나?꽃도둑 202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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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부러진 가지
눈 녹여 물 끓이는
가마솥 아래

-부손

 

부산엔 눈이 잘 오지 않는다.

눈을 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하지만 어릴 적 강원도에서 자란 나는 지겹도록 눈과 뒹굴며 살았다.

게다가 방학만 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경상북도 봉화군 봉성읍 남면.... 도로가 없어 십 리나 되는 길을 걸어야 나오는 오지 마을엔자주 눈이 내렸다. 하얗고 탐스런 함박눈이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곤 했었다.아침에 일어나 보면 밤새 내린 눈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처마끝에는 며칠 째 녹지 않은 고드름이 달려 있고우물은 얼어 물을 구하지 못할 때,할아버지는 커다란 가마솥에 눈을 퍼 담고는 불을 지폈다.

 

지금 가만히 떠올려 보면 시골의 겨울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진 나뭇가지들,눈 위에 찍힌 누군가의 발자국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굴뚝의 연기와 사람들의 입김고요와 정지된 화면 속에서 움직이던 우리들(나와 동생들)혀를 쏙 내밀고 혀 위에서 사르르 녹는 눈을 받아 먹기도 하고눈이 눈에 들어 갔을 때의 차가움의 전율이란!그땐 세상을 감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립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던 그 풍경들이...

 

 

나비 추락해

크게 울려 퍼지는

얼음판

 

-가키오

 

 

나비효과 이론이 나오기 전 이미 가키오는 이걸 알고 있었는지...

연약해서 아무런 힘이나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 같은 나비가 추락과 동시에

얼음판을 크게 울린다고 표현하고 있다.

나비효과 이론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톤 로렌즈가 기상 패턴을 분석하다가 고안해낸 것으로

하나의 작은 사건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 나중에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이론에서 출발해 현대 과학의 카오스 이론의 기초가 되었으며

더 나아가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시인의 눈엔 한 마리의 나비의 추락은 한 세계의 추락으로 다가왔을 것이다.얼음판으로 추락했을 때, 그 나비 만이 가지고 있던 세계는 그것으로 끝이 났을 것이다.나비 안에 있던 세계가 얼마나 크고 웅장했을 지,나비가 꾸던 꿈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아무도 관심 없을 때 시인은 그걸 알아봐 주었다.

 

우리는 아주 사소하거나 작은 일에 아무 것도 아닐 것이라 여기며 그냥 지나쳐버리고

뭐든 물질적 값으로 환산하길 주저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만 쫓아 다니고

별 다른 생각 없이 사용하는 물건들과 에너지

편의 위주의 행동들

이 또한 나비의 날갯짓에 해당한다는 것을 시를 읽으며 깨달았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기후변화의 문제에 대한 감수성,세 줄의 시에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귤을 깐다

손톱 끝이 노란색

겨울나기

 

-시키

 

그런 적이 있었다. 귤을 너무 까 먹어서 손톱 끝이 정말 노란색이 되어었다.

이불 밑에 발을 묻고서 친구랑 수다를 떨면서 하염없이 귤을 먹었다.왜 그리도 맛있던지... 달콤새콤 입안에서 터지던 귤의 상큼함이란!겨울방학 동안 할 일이 별로 없던 중딩들의 삶이 그랬다.요즘이야 놀거리가 차고 넘치지만 그때는 TV 보기와 수다 말고는 딱히 없었다.TV도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아예 플러그를 빼놓고는 꼭 허락을 받고 봐야 했던 서러운 시절이었다.겨울나기는 친구들과의 수다와 귤 까먹기가 최고였다.너무 많이 먹어 손바닥까지 노랗게 변할 정도였다.

이불 밑에 발을 묻고 깔깔대며 수다를 떨던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겨울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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