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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내 맘대로 읽기

봄에 읽는 하이쿠(2022)

by 나?꽃도둑 2022.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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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벚꽃 오십리 길

 

노란 유채꽃

확 번져서 환해진

변두리 동네

 

-시키

 

함양에 온 지 두 달이 되어간다.

농촌 경험과 농업 교육을 겸한 1년 살아보기 체류형 함양살이를 하면서 부산을 오가고 있다.

처음 이곳에 신청서류를 넣고 면접심사를 위해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2월이었다.

마른 풀과 나뭇가지를 흔들어대던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부여잡고 휑한 눈으로 이곳을 둘러봤던 기억이 난다.

겨울의 삭막한 풍경만큼 마음도 을씨년스럽고 서걱거렸다.

 

그런데 봄이 되면서 이곳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참새 혓바닥 같은 연둣잎이 돋고 여기저기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초록과 꽃이 확 번져서 변두리까지 환해졌다.

그래서인지 시키의 하이쿠는 그림 한 폭이 되어 마음 속으로 훅 들어왔다.

세 줄의 글이 그림이 되는 순간, 

더욱 명징하게 현실 속에서 꿈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디를 가든 봄의 향연이다.

어디를 가든 생동감으로 몸과 마음이 들썩이게 된다.

길을 가다가 자주 멈추게 된다. 정말 눈물나게 아름다운 계절이다.

 

올봄 산에서 처음 수학한 두릅

 

향도 맛도 좋은 오가피순
하얀 찔레꽃

 

어제도 저물고

오늘도 또 저물어

가는 봄이여

 

-부손

 

가는 봄이 너무 아쉽다. 특히 봄을 유독 좋아하는 나로선 위기 의식마저 느낀다. 이러다 아예 봄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진 현상은 꽤 된 것 같다.

어제도 저물고 오늘도 또 저물어 가는 봄을 보면서

봄만 지속되는 곳에서 살고픈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자꾸 저물어 가는 봄을 조금이라도 잡아두고 싶었다.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건 마음에 담아두고 사진과 글로 남기는 일이다.

그래, 그것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게으름을 떨치고 조금 부지런을 떨어보자.

그래서 3개월 만에 다시 글을 써 본다. 봄에 관하여, 봄을 위하여 아니 봄을 사랑하는 나를 위하여!

 

 

피기만 해도

바라보기만 해도

꽃 지기만 해도

 

-오니쓰라

 

봄이니까 그렇다.

피기만 해도 바라보기만 해도 꽃지기만 해도 설레고 눈물겹게 아름답고 아쉽다.

세상의 많은 것이 그렇다고 몸으로 배워왔다. 사람과의 인연도 그렇고 세상에 펼쳐진 풍경도 그렇다.

그런 때가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때를 맞고 있다.

계절의 순환처럼 자연스레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봄,

나도 아름답고 너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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