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밤
내 그림자와 함께
나에 대해 쓴다
-세이센스이
겨울은 낮보다 밤이 길어지는 계절이다.
예전에는 일찌감치 집에 들어박혀 할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사색에도 빠지기도 하고 쓸데 없는 생각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겠지만
읽을거리 볼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선 자신과의 대화나 성찰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관심과 시선은 늘 밖으로 향하거나 타인의 욕망에 맞추어 살다보니 나를 잃어버렸다.
연예인이나 타인에 대해선 이러쿵 저러쿵 잘 알면서 정작 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가십거리엔 침을 튀겨가며 말할 순 있어도 조금만 철학적 주제로 넘어가면 그 진지함을
견디는 힘이 없어 얼렁뚱땅 넘겨버린다.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좋은 삶이란 어떤 건지...
겨울 밤
홑겹의 나무문 너머로 사락사락 하얀 눈이 쌓이는 밤
시인은 깊어진 그림자와 함께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쓰고 있다.
쓰면서 자기를 발견하고 또 발명한다.
미처 알지 못했던 자기 안의 신성을 만나기도 하고
무의식의 세계에서 건져올려진 빛나는 문장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겨울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그 시간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너무 산만하고 얕다.
첫 겨울비
원숭이도 도롱이를
쓰고 싶은 듯
-바쇼
겨울비는 차다.
원숭이도 도롱이를 쓰고 싶은 건 당연해 보인다.
그걸 알아봐 주는 시인의 눈은 밝고 가슴은 따듯하다.
인간 만이 세상 만물의 근원인 것처럼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정말 오만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동물도 추우면 추위를 타고 생각도 하고 고통도 느낀다.
한낱 미물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생명의 고리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인간의 삶 또한 무너지게 마련이다.
겨울비에 원숭이도 도롱이를 쓰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 건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생태적인 기본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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