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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내 맘대로 읽기45

11월에 어울리는 하이쿠 한밤중 몰래벌레는 달빛 아래밤을 뚫는다 -바쇼 11월이 되면 해가 일찍 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한다.농촌에서는 밤이 길어지면 일찍 잠자리에 든다.모두가 잠든 한밤중벌레는 달빛 아래 밤을 뚫는다고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울음소리로 밤을 뚫는 건새벽을 바라는 마음에서일까?얼마 남지 않은 생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일까?아, 모르겠다...벌레들만이 알 일이지.아니 시인은 알고 있었을테지그 비밀을 폭로하기 전 한밤중까지 잠 못 이루며 집밖으로 귀를 열어두었을테지.세상의 모든 사물과 내통하는 자,시인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혼자 자다가눈떠져 깨어 있는 서리 내린 밤 -지요니 24절기 중 열여덟 번째 절기인 상강이 되면 밤 기온은 서리가 내릴 정도로 매우 낮아져서 춥다.겨울잠 자는 벌레는 모두 땅에 숨고 사람들은 움츠.. 2020. 11. 4.
그대들의 잔치... 간밤 파티가 끝나고 버려진 꼬깔모자 그대들의 머리위에서 빛나던 왕관인데.. 이렇게 버려져도 괜찮은가? 빛나던 노래는 이미 사라졌고 인생의 또 다른 달콤함을 찾아 떠난, 그대들이 머물렀던 자리에 남는 이 쓸쓸함은 뭔지 나는 그저 슬프다. 2020. 11. 1.
르네 마그리트 <연인들> 을 읽다 답답한 연인들... 얼굴에 뒤덮인 하얀색 천을 걷어주고 싶다. 불투명한 미래...불투명한 관계, 불투명한 소통, 불투명한 오해와 질투, 뭣하나 분명한 게 없나보다. 서로를 원하나 온전하지 않고 키스를 하고 있으나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없나보다. 하얀천은 자꾸 입속으로 감겨들고 갈망하는 호흡은 가빠지고...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현실과 직면하고 있다. 저들을 가로막는 문제가 무얼까?.... 서로의 민낯을 마주할 수 없는데는 분명 어떤 상황이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랑하지만 만날 수 없는 연인들 서로를 원하지만 자꾸 어긋나는 연인들 갈망하지만 그게 해소가 되지 않는 연인들 마음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 연인들 거짓된 사랑을 하는 연인들 숨어서 몰래 만나야 하는 연인들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연인들 코로나 .. 2020. 10. 30.
빵구 씨의 또 다른 가족 집을 나갔던 빵구 씨를 길에서 발견했다. 멀리서도 빵구 씨임을 알아보고 드디어 그가 집으로 돌아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집 앞에 나타나 울던 전생의 아내인 흰고양이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빵구 씨의 기막힌 사연을 그의 아내로부터 들었던 터라 직감적으로 전생의 아내와 자식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남의 가정사에 이러쿵 저러쿵 할 마음은 없지만 조금 호기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쩌자고...전생의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나타난 건지... 남자들은 가끔 앞 뒤 안 재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전생의 아내와 자식들은 빵구 씨와 똑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흩어지면 죽을 것 같은 결의까지 보였다. 하긴 여기까지 따라나선 건 보통 결심이 서지 .. 2020. 10. 29.
바다와 고양이 지난 일요일, 거제도 대계리 마을 갯바위에서 태어난지 두 달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 고양이를 만났다. 어쩌다 험난한 갯바위까지 왔는지 알 수 없으나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듯 했다. 낚시꾼 근처에 가만히 엎드려 있거나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 매우 익숙해 보였다. 이 아이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고양이를 만날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저 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하고 궁금해졌다. 코끝에 감기는 비릿한 바다내음과 일렁이는 물결과 수면에 부서지는 눈부신 햇빛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도하고 의연하고 신중한!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삶, 하지만 모든 걸 스스로 해내야 하는 고단한 삶, 끝이 .. 2020. 10. 26.
가을밤에 읽는 하이쿠 이 가을 저녁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가볍지 않다 -잇사 우리는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기도 한다.태어남과 모든 것이 튀어오르는 성장의 봄을 만나청춘과 삶의 절정인 여름이 지나면삶을 관조할 줄 알게 되는 가을을 맞게 된다.눈치 챌 겨를도 없이 어느새싱싱하던 나뭇잎이 시들어가고삶에도 생기를 잃어가게 된다. 하지만 깊어진다.비로소 나와 주위를 둘러보게 되면서세상 모든 만물에 생성과 소멸이 있음을 알게 되고애잔한 마음을 품게 된다. 시인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가볍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그것도 이 가을 저녁에 온 몸으로 씌여진 싯구이기에 더욱 더 절절하게 와 닿는다.왜 그런 표현을 했을까?...스산해진 가을 저녁에 귀밝고 마음이 환해진 시인은여름 한철을 살다간 모든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을까...한 시절 함께 살았지.. 2020. 10. 18.
빵구 씨의 기막힌 사연 빵구 씨 아내가 들려준 이야기는 정말 기막히고 황당했다. 이걸 믿어야 하나 의심하면서도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한 달 전이었어요. 하얀색 고양이가 나타나 문밖에서 우는 거예요. 배가 고파서 그러나 싶어 편의점에서 캔사료를 사서 놓아주기도 하고 집에 있는 참치도 주었는데 먹지를 않고 계속 우는 거예요. 남편이 엄청 괴로운 표정으로 있길래 안되겠다 싶어 슬그머니 나가 고양이를 쫓아버렸어요, 그런데 고양이를 쫓아버린 그날 밤에 남편도 사라져버렸어요. 이상한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무슨 내용이어었어요? 궁금해서 미치겠어요..." 나는 정말 편지내용이; 궁금해서 몸이 근질거렸다. 빵구 씨 아내의 얼굴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빵구 씨 아내는 후~ 짧게 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편지 내용은.. 2020. 10. 17.
빵구 씨 가족을 만나다 10월 2일에 올린 빵구 씨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야겠다. 오늘 우연히 해운대 센텀에 위치한 휴대폰 매장에서 빵구 씨의 가족을 만났다. 아내와 아들, 쌍둥이 딸. 가족 모두가 빵구씨와 판박이처럼 닮아서 바로 알아봤다. 그들은 빵구 씨와 같은 자세를 하고선 창밖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곧 창밖으로 뛰쳐나갈 자세처럼 보였다. 가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호기심과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다. "저...혹시, 빵구 씨 가족 아닌가요?" "헉, 우리아빠다!" "네 맞아요.....근데.. 제 남편을 어떻게 아세요?" 나는 휴대폰을 꺼내 빵구 씨 사진을 보여주었다. "남편이 맞아요!" 빵구 씨의 아내는 남편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숨가쁘.. 2020. 10. 16.
10월에 어울리는 하이쿠 시월이어서 아무 데도 안 가고 아무도 안 오고 -쇼하쿠 시월이면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미게 된다. 이제 곧 닥칠 겨울의 문턱에서 잠시 주춤하며 서 있는 셈이다. 날이 추우면 마음까지 얼어붙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내가 그러한데 너는 오죽할까?...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발이 묶여 있는 요즘, 쇼하쿠의 하이쿠는 절실하게 와 닿는다.스스럼 없던 인간관계에 균열이 오기 시작하고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무 데도 안 가고아무도 안 오는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허수아비 소매 속에서 -지게쓰 시인의 상상력이란! 그렇다면 나는 가을이 허수아비 소매 속에서 울고 있다고 해석하겠다.안 그래도 요즘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있다.처서라는 절기가 되면 신기하게도 모기가 들.. 2020.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