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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내 맘대로 읽기

바다와 고양이2

by 나?꽃도둑 2021.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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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해동용궁사 근처 바닷가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났다.

해동용궁사 건너편 일출봉이 있는 해안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쌍둥이처럼 생긴 두 녀석이 우리를 보자마자 스스럼없이 촐랑촐랑 다가왔다.

꼬리를 잔뜩 치켜세우고 와서는 다리에다 얼굴을 부벼대며 냐옹냐옹거렸다.

경계심이라곤 전혀 없는 거의 개냥이 수준이었다. 딸이 마구 쓰다듬어도 가만있었다.

우리집 고양이도 이렇게까지 애교는 없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키우다가 누가 버린 건가?....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둘 다 귀끝이 조금 잘려 있었다. 중성화 수술을 한 길고양이들이었다.

 

혹시 배가 고파서 그런가 싶어 딸이 뭐라도 사오겠다며 아빠한테 돈을 받아들고는 왔던 길을 뒤돌아 뛰어갔다.

남편도 먹을 게 있으면 사오겠다며 원래 우리가 가려던 길로 가버렸다.

길의 중간지점이어서 둘 다 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고양이들과 놀기로 했다.

 

 

 

"너희들 쌍둥이니? 진짜 많이 닮았네..."

말을 시켜도 두 녀석은 들은 척도 안하고 짐짓 딴청을 피우거나 폴짝거리며 주위를 뛰어다녔다.

그러는 사이 내 시선은 사람들이 쌓아 놓은 돌탑으로 향했다.

바다에 길게 드리운 햇빛 사이로 올망졸망 서 있는 작고 귀여운 돌탑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너희들 어디 가지말고 여기 있어."

 

 

 

그러고는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고양이들은 잠시 잊었다.

 

딸이 돌아온 것을 보고서야 고양이들에게 돌아갔다.

으깨어 놓은 달걀은 쳐다 보지도 않고 물만 홀짝 거리는 녀석들..

배가 고픈 게 아니었나?...

정말 그랬다. 국립수산과학원 계단에 누군가 아이들을 챙겨주는지 사료통과 물통이 놓여 있었다.

아,,,,미리 주변을 살폈다면 힘들게 뛰어갔다 오지 않아도 될 걸 하며 딸이 억울해했다.

 

 

그런 딸의 수고로움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녀석들은 갑자기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후다닥 원숭이처럼 나무를 타고 오르는 것이다.

거기다가 포즈까지 잡아준다. 캬....기가막힌 순간이었다.

세상에 나무 타는 고양이를 보게 되다니...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두 녀석은 나무를 타고 장난을 치며 멀리 바다를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 순간이 언제 또 찾아오게 될지 모르겠다.

이런 행운이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겠다..

힘겨운 삶을 이어나가는 길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 시리도록 느끼는 측은함과 동시에

야생의 삶에 대한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충돌하곤 한다. 

얼마나 강한지... 또 얼마나 약한 존재들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냥 개입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끔 그런 존재들에게서 놀라운 선물을 받게 된다.

살아 있음에 대한 증거, 삶의 천진함을 마음껏 발산하는 이러한 순간이 바로 그런 선물이다.

 

 

flower-thief20.tistory.com/163?category=804438

 

바다와 고양이

지난 일요일, 거제도 대계리 마을 갯바위에서 태어난지 두 달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 고양이를 만났다. 어쩌다 험난한 갯바위까지 왔는지 알 수 없으나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듯 했다. 낚시꾼

flower-thief20.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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