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칩거
다시 기대려 하네
이 기둥
-바쇼
그야말로 한겨울 칩거다.
사방은 고요하고 세상은 정지되어 버렸다.
갈 곳도 없고 갈 곳도 잃어버린 채 멍하니
이 자리에서 삶이 얼어붙었다.
무엇에 기대어 살아야 할까...
다시 일어서고자 할 때 삶이 휘청이면 어쩌지?
그때 무엇에 기대야 할까...
다시 기댈 수 있는 기둥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할텐데
그게 너라도 상관 없고
또 다른 나라도 상관 없다.
그래도 기울어버린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게 나 자신이었으면 하는 것은
결국 삶은 혼자 서는 것이므로
내 안의 단단한 기둥 하나쯤을 가지고 싶은 거다.
모조리 죽어버린 들판에 내 발자국 소리
-호사이
이 짧은 한 줄의 시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풍경을 담아내는지 정말 감탄스럽다.
모조리 죽어버린 겨울 들판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시인이 그려낸 이 문장의 깊이와 정취를 알기 어려울 것이다.
바람도 불지 않는 겨울 어느 날, 사방은 고요한데 살갗에 에이는 찬기운에 옷깃을 여미고 걸어가는 시인.
자박 자박 사그락 사그락 마른풀 밟는 소리
혹은 뽀드득 뽀드득 쌓인 눈을 밟는
허허로운 겨울 들판에 가난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조리 죽어버린 겨울 들판에 나만 살아 있는 건가?..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시인은 상념에 젖어 외로이 걸어가고 있다.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가
-산토카
바람이 불던 날 억새가 이리저리 미친듯이 휘날렸다.
정처 없이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가
정말 묻고 싶었다.
이 길 몇 사람 걸어간 길 나 오늘 걸어가네
-산토카
앞서 걸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길 위를 걷는 시인은 혼자가 아닌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듯이 앞서간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을 포개면서 앞서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뒤에 올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다.
걸어간 흔적은 살다 간 흔적일 수도,
앞서 걸어 간 흔적일 수도...
방에서 문을 통하지 않고 나갈 수가 없듯이 사람이란 길을 밟지 않고 갈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게 인생이든, 삶의 목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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