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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송곳니 요르고스 란티모스 그리스 영화감독의는 매우 특이한 영화다. 영화 자체가 독재에 대한 우화, 혹은 거대자본과 권력에 대한 신랄한 은유로 가득하다. 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높은 담장과 그들이 교육 받는 언어다. 담장은 자유의 한계이고 언어는 세뇌이자 인식의 틀로 작용한다. 담장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뿐이다. 그는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계획하고 통제하고 권력을 행사한다. 특이한 것은 이들에겐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다. 주체로서의 변별성을 획득하는 술어도 갖지 못한 채, 가족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진다. 몸은 다 큰 어른이지만 어린아이마냥 순수한 본능과 무지만 표출될 뿐이다. 욕망도 수치심도 없이 사소한 것을 얻기 위해 오빠의 섹스파트너인 크리스티나의 성기를 (이들은 키보드라 부른다).. 2021. 2. 19.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을 읽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상하다.. 하늘은 낮이고 지상은 밤이다. 상식과 완전 배치되는 이질적인 두 세계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이쪽과 저쪽이 다른 두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기 위해서는 현실은 잠시 잊기로 하자. 빛의 제국으로 가는 두 갈래의 길부터 찾기로 하자 아니 그보다 어느 쪽이 진짜 빛의 제국인 걸까... 밤이 찾아온 지상의 집에는 불이 켜져있다. 집 주위의 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벽난로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다. 춥지 않은 늦봄이나 여름 쯤으로 보인다. 뜰과 방안 불빛은 그다지 밝지 않은 은은한 조명에 가깝고 어른거리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없다. 이제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노부부의 방일까? 빛의 제국에서는 어둠과 빛이 함께 존재해야만 서로의 존재를 극명하게 드러내게 마련이다. 지상의.. 2021. 2. 18.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이소라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무도 없는 길을 걸었다.매서운 바람이 뒤에서 몸을 밀어낼 정도로 강하게 불어와서 노래를 멈췄다.패딩 후드를 뒤집어 쓰고 천천히 바람을 느끼며 걸었다. 바람은 성난 파도가 되기도 하였고 휘몰아치는 거미줄이 되기도 하였다.바람은 마음에 어떤 풍경을 만들어냈다.몸에 새겨지는 감각들...먼 곳에서 불어온 바람이 나를 깨우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흔들어 깨웠다.세상이 흔들렸다. 휘몰아치는 바람을 만난 것들은 모두 느낀다.바람을 그냥 아는 것과 만나 경험함으로써 느끼는 것은 다른 것이므로...이 모든 순간들이 너무 소중해진다.추위 따윈 저리가라. 나는 느끼므로써 존재한다.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내 마음의 한 부분을 빼앗기지 않으면 찾아오지 않는 법이다.한.. 2021. 2. 17.
[영화] 코코(COCO) 를 세 번이나 봤다. 영화, 드라마, 책을 통틀어 세 번이나 반복해서 본 건 아마도 처음 있는 일 같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다음 장면, 대사들이 문득 문득 떠올라 반감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세 번 보면서도 지겹지 않았던 것은 이 영화에 매료되었던 건 아닐까 싶다. (어떤 면에서?.... 그냥 다~~ 영화의 소재, 단단한 스토리 구조, 음악, 개성 넘치는 캐릭터, 미술적 아름다움, 색감, 미장센, 주제, 배경, 메시지. 반전 등등.) 멕시코 마을 산타 세실리아에 사는 소년 미구엘은 뮤지션이 꿈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음악을 싫어하며 미구엘의 꿈을 반대한다.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인 신발제작 일을 하길 바라지만 미구엘은 전설적인 뮤지션인 에르네스토 델라 크루즈를 보며 꿈을 키워나간다. 죽은 자를 기리는 가족사.. 2021. 2. 16.
2월에 읽는 하이쿠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가 -산토카 마른 나뭇가지에 까마귀들이 날아와 까맣게 앉았다. 한 두마리 푸르륵 날갯짓을 하니 모두 함께 날아올라 밭가에 내려 앉는다. 바람은 차고 하늘은 맑다.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가' 이 한 줄의 시로 묻고 싶다. 너희들은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지.. 또 나는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지... 그러고보면 삶은 늘 길 위에 있는 시간들이었다. 무언가를 찾고자, 얻고자 헤매고 달리고 방황하며 보냈다. 하지만 가끔 멈춰서 되돌아보면 무엇을 찾아 길을 가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묻곤 한다.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가.... 다 알 수 없는 게 인생일까?... 올빼미여 얼굴 좀 펴게나 이건 봄비 아닌가 -잇사 우리 모두 얼어붙은 겨울이 너무 싫은 올빼미.. 2021. 2. 15.
[영화] 승리호 요즘 넷플릭스를 뜨겁게 달구는 조성희 감독의 를 드디어 봤다!우주공간에서 벌어지는 한국판 SF 영화라니... 비교적 만족스러웠는데 점수를 주자면시각특수효과(VFX)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시나리오 ⭐⭐⭐⭐조연급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 대사가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 오디오 상태 ⭐⭐⭐다.SF영화는 어설프게 만들면 진짜 못 봐 주는데 는 그런 면에서 일단 합격점이다.시각특수효과는 헐리웃 영화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완성도가 있었고, '승리호'를 이끌어가는 네 명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딸의 시체라도 찾기 위해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승리호의 조종사 태호(송중기), 과거 우주 해적단을 이끌었던 뛰어난 두뇌와 지랄맞은 성격의 소유자 장선장(김태리), 과거 갱단 두목으로 문신과 .. 2021. 2. 14.
[책] 환상의 빛 ㅣ미야모토 테루 20세기 후반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의 은 '환상의 빛, 밤 벚꽃, 박쥐, 침대차' 총 네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환상의 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으로 1995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환상의 빛'은 유미코가 7년 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남편에게 띄우는 편지형식을 취하고 있다. 태어난 지 석달 된 아들 유이치와 자신을 남겨두고 자살한 남편을 잊기 위해 유이치가 막 네살이 될 무렵 자신이 살던 아마사키에서 재혼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해변마을 소소기로 오게 된다. 유미코는 남편과의 추억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달아났다고 여겼지만 불쑥불쑥 찾아드는 건 남편이 왜 자살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지난 7년을 돌아보며 죽은 남편을 만나 결혼.. 2021. 2. 13.
마늘가방 밤 9시가 조금 넘은 지하철 안은 뜨문뜨문 자리가 있을 만큼 한산했다. 친구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마늘 냄새가 진동을 했다. "와 진짜 지독하다" 낮게 소근 대며 우리는 마늘을 먹었을 법한 인물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늘을 먹었다는 소리는 고기를 먹었다는 소리고, 고기를 먹었다는 소리는 술을 마셨을 것이라는 추측 아래, 술을 한잔 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친구 옆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 왜 저래?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거야? 미안하지만 우리는 칼국수밖에 안 먹었거든! "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늘 냄새는 흐릿해지다가도 가끔 강하.. 2021. 2. 9.
반신욕의 묘미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한 접이식 욕조가 드디어 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목욕탕에 발길을 끊은지 6개월을 넘어서자 한계치에 다다른 건지 온몸이 근질근질하고 찌뿌뚱했다.도저히 견딜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접이식 욕조를 사게 된 것이다.습관이란 이렇게 무서운 법,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라는 옛날 영화제목처럼 몸은 너무나 정직하다. 포장을 뜯자마자 뜨거운 물 받고 바로 입수!미야모토 테루의 을 읽으려고 들고 갔지만 책을 열어보지도 못했다.광고에서처럼 덮개 위로 고개와 팔을 내밀고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덮개를 덮는 데 실패했다.누가 위에서 덮어주지 않으면 사진에서처럼 완벽한 모습을 재현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아무튼 노곤노곤 따듯따듯 30분이 지나자 머리 밑에서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욕조를 떼어낸 게 후회되.. 2021.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