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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고양이2 지난 일요일 해동용궁사 근처 바닷가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났다. 해동용궁사 건너편 일출봉이 있는 해안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쌍둥이처럼 생긴 두 녀석이 우리를 보자마자 스스럼없이 촐랑촐랑 다가왔다. 꼬리를 잔뜩 치켜세우고 와서는 다리에다 얼굴을 부벼대며 냐옹냐옹거렸다. 경계심이라곤 전혀 없는 거의 개냥이 수준이었다. 딸이 마구 쓰다듬어도 가만있었다. 우리집 고양이도 이렇게까지 애교는 없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키우다가 누가 버린 건가?....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둘 다 귀끝이 조금 잘려 있었다. 중성화 수술을 한 길고양이들이었다. 혹시 배가 고파서 그런가 싶어 딸이 뭐라도 사오겠다며 아빠한테 돈을 받아들고는 왔던 길을 뒤돌아 뛰어갔다. 남편도 먹을 게 있으면 사오겠다며 원래 우리가 가려던 길로 가버.. 2021. 1. 18.
부산 '해동용궁사' 며칠 전 가족끼리 송정옛길을 걷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 7시에 출발하기로 해놓고선 눈을 뜨니 7시가 넘었다. 베란다 창문을 열었는데 바람도 불고 제법 추웠다. 저절로 움츠려드는 몸과 마음. 조금만 더 있다가 출발하자 싶어 미기적미기적 창밖을 봤다가 시계를 봤다가 하면서 토스트를 준비했다. 결국 8시가 넘어서야 출발했다. 딸은 추워서 걷기 싫다고 그냥 드라이브만 하면 안되냐고 은근히 투정을 부렸다. 그래서 일단 따뜻한 커피부터 마시기로 했다. 내친김에 송정까지 달렸다. 송정옛길은 해운대와 송정을 잇는 길이어서 송정에서 해운대로 넘어가도 상관 없는 코스였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송정옛길을 포기했다. 걷기에 멀다는 것과 산길을 걷기에는 춥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딸의 한마디 "뭐 볼 거 있나?"가 결정적.. 2021. 1. 17.
겨울밤에 읽는 하이쿠2 한겨울 칩거다시 기대려 하네이 기둥 -바쇼 그야말로 한겨울 칩거다.사방은 고요하고 세상은 정지되어 버렸다.갈 곳도 없고 갈 곳도 잃어버린 채 멍하니이 자리에서 삶이 얼어붙었다.무엇에 기대어 살아야 할까...다시 일어서고자 할 때 삶이 휘청이면 어쩌지?그때 무엇에 기대야 할까...다시 기댈 수 있는 기둥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할텐데그게 너라도 상관 없고또 다른 나라도 상관 없다.그래도 기울어버린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게 나 자신이었으면 하는 것은결국 삶은 혼자 서는 것이므로내 안의 단단한 기둥 하나쯤을 가지고 싶은 거다. 모조리 죽어버린 들판에 내 발자국 소리 -호사이 이 짧은 한 줄의 시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풍경을 담아내는지 정말 감탄스럽다.모조리 죽어버린 겨울 들판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시인이 그.. 2021. 1. 16.
[책]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요리 프로그램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텔레비전 채널마다 방송을 할 만큼 인기의 배경에는 요리와 오락을 접목시켜 시청자들의 오감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리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맛을 낸다. 요리사는 맛의 극대화를 위해 요리의 팁을 알려 주곤 하는데, 요리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 무엇을 넣을 것인가의 순서의 문제, 불의 세기와 조리시간, 양념의 양 등 음식재료간의 궁합들로 인해 요리는 한층 더해진 맛과 영양의 두 마리 토끼를 쫓게 된다. 그야말로 맛과 영양의 과학이다. 그만큼 과학은 일상생활에 깊숙이 관여한다. 과학은 모든 것에 보다 보편적이고 신뢰할 만한 것인지에 대해 대답을 하려고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틀 안에서는 대답할 수 없.. 2021. 1. 15.
해운대 해운정사 해운정사는 가끔 지나다니는 길에 위치한 사찰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도로가 마비가 될 정도로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유명한 사찰이라는 말만 들었지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일단 저 계단 위에 선뜻 발을 올려 놓을 수가 없다. 위로 쭉 뻗은 계단을 보고 있으면 아득하니 극락으로 가는 계단인가 싶다.. 그런데 어제 남편하고 밥 먹으러 가던 길에 놀라 멈춰 섰다. 부처님 오신 날도 아닌데 형형색색 예쁜 등이 입구에서부터 계단을 타고 걸려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안구정화에 영혼까지 세탁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름다운 광경에 영혼이 탈탈 털려가며 사진을 찍느라 남편이 사라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여간 기다릴 줄 모르는 원시인 같으니라고..... 한 곳에서 오래 머물 줄 모르는 DN.. 2021. 1. 14.
<창비 어린이> 와 동화작가 되기 작년에 이어 구독을 또 신청했다. 신청하기 전 담당자 연락을 받고서 구독을 할까말까 잠시 망설였다. 목디스크 때문에 책 읽기를 중단한 상태여서 지난호도 밀려있었다. 가을호는 읽다가 말았고 겨울호는 아예 포장조차 뜯지 않았다. 어쨌든 구독 신청 며칠 뒤 증정품인 와 다이어리가 도착했다. 뜻밖의 선물이었다. 증정은 매번 원하는 책으로 보내주었는데 이번에는 물어보지도 않고 덥석 보내온 것이다. 창비에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건지 딱 필요한 책을 보내주어서 반갑고 놀라웠다. 는 몇 년 전 동화공부를 시작하면서 구독한 계간지다. 열심히 동화를 써보리라 결심했지만 삶이 나를 속이는 바람에 지금은 유야무야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동화공모전에서 받은 몇 개의 상과 문학상 한 군데와 신춘문.. 2021. 1. 13.
[책] 이야기의 탄생 우리 인간은 이야기에 열광한다. 끊임없이 나오는 책이나 영화, 뒷담화나 가십거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보낸다. 우리의 끝이 죽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살아가듯 끊임없이 반복되고 생성되는 이야기를 마치 처음 대하는 것처럼 눈을 반짝이고 귀를 열어둔다. 왜 그럴까?... 어느 책에선가 읽은 한 대목이 생각난다. 희미한 기억에 의존하자면 대략 이렇다. 인간의 진화 속에는 뒷담화나 소문이 필수였다고 한다. 육체적으로 약했던 인간은 뭉쳐야했고 무리에 해가되는 요소들을 없애기 위해 소문과 뒷담화를 이용해 문제가 있는 인간을 제거하거나 소외시킴으로써 무리에 득이 되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또한 거짓 소문과 왜곡, 권모술수와 비틀기와 과장하기, 모함으로 라이벌을 누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책 서문에서도.. 2021. 1. 12.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투덜대며 두 번에 걸쳐 보고서야 각본과 연출을 맡은 찰리 카프먼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뭐 이런 영화도 있지..." 하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스토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가끔 이런 영화는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준다. 마치 퍼즐맞추기 게임을 하듯 머리를 굴려야 한다 그래서 뭐가 어찌 됐다고?...짜증과 탐구정신을 동시에 유발시키는 는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불친절하고 난해한 영화다. 여자가 고질적 어긋남 때문에 헤어질 것을 고민하는 것처럼 영화 또한 관객의 기대와는 한참 어긋나 있다. 시간의 연속성 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게 아니라 현재인지 과거인지 모르는 시간이 마구 엉켜있고 끝없는 반복속에서 이야기가 우로보로스처럼 꼬리를 .. 2021. 1. 11.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는 세계적 거장인 캔 로치 감독의 작품이다. 제 21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처음 상영되었고 BIFF시민평론단 사이에 꼭 봐야 할 영화 1순위에 올랐던 영화다. 몇 번 상영하지 않은 탓에 티켓전쟁이 일어날 만큼 화제작이었다. 그리고 12월에 국내 개봉이 결정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왔다. 영화는 평생을 목수로 살아가던 다니엘이 심장병으로 일을 계속 할 수 없게 되면서 시작된다. 다니엘은 의사의 소견에 따라 일을 할 수 없어 질병수당을 신청하지만 담당관은 점수가 미달된다는 이유로 기각통보를 한다. 재신청을 하려면 전화를 기다려야 하고 전화는 오지 않는다. 답답한 다니엘은 실업수당을 받으려고 구직센터를 찾아간다. 거기서 케이티라는 여성이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수당지급.. 2021.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