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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내 맘대로 읽기

11월에 어울리는 하이쿠

by 나?꽃도둑 2020.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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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몰래

벌레는 달빛 아래

밤을 뚫는다

 

-바쇼

 

11월이 되면 해가 일찍 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농촌에서는 밤이 길어지면 일찍 잠자리에 든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

벌레는 달빛 아래 밤을 뚫는다고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울음소리로 밤을 뚫는 건

새벽을 바라는 마음에서일까?

얼마 남지 않은 생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일까?

아, 모르겠다...

벌레들만이 알 일이지.

아니 시인은 알고 있었을테지

그 비밀을 폭로하기 전 

한밤중까지 잠 못 이루며 집밖으로 귀를 열어두었을테지.

세상의 모든 사물과 내통하는 자,

시인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24절기도 출처 다음백과 

 

혼자 자다가

눈떠져 깨어 있는 

서리 내린 밤

 

-지요니

 

24절기 중 열여덟 번째 절기인 상강이 되면 밤 기온은 서리가 내릴 정도로 매우 낮아져서 춥다.

겨울잠 자는 벌레는 모두 땅에 숨고 사람들은 움츠리게 된다.

춥고 고요하고 쓸쓸한 계절이다.

그것도 혼자 자다가 불현듯 깨어나 서리 내린 밤을 보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세상의 소음과 번잡함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을 때

이러한 곳에서 며칠이라도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고요한 산사에서 새벽을 맞는 것처럼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은 평온하고 깨끗해지는 그런,...

새벽에 홀로 깨어 서리 내린 밤을 경험해보고 싶다.

 

 

 

 

 

 

 

옆방의 불도 

꺼졌다

밤이 차다

 

-시키

 

 

자자. 따뜻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곤히 자자.

옆방의 불도 꺼지고 밤이 찬데

무엇을 더 할 수 있으랴?

 

 

 

부러워라

아름다워서 지는

단풍나무 잎

 

-시코

 

어떤 사람은 단풍이 들기도 전에 졌다.

단풍이 들어서 지는 게 아름다운 건 맞다.

그건 그렇다고 한 우리 모두의 약속이니까...

하지만 단풍이 들기도 전

스스로 뛰어내린 저 푸른 잎들은

제 발등을 덮지 못한 채 길 위를 구르고 있다.

사람들 발에 차이고 온갖 소문에 차이고 눈물과 한숨에 차인다.

푸른 잎이 지는 건,

그저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건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아름다워서 지는 

단풍나무 잎이 되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견디고

비바람을 견디고

내리 쬐는 햇빛을 견뎌야 한다.

견디지 못한 것을 두고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아깝고 또 아까운 생명이어서

아름다워서 지는

단풍나무 잎이 되길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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