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어서
아무 데도 안 가고
아무도 안 오고
-쇼하쿠
시월이면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미게 된다.
이제 곧 닥칠 겨울의 문턱에서 잠시 주춤하며 서 있는 셈이다.
날이 추우면 마음까지 얼어붙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내가 그러한데 너는 오죽할까?...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발이 묶여 있는 요즘, 쇼하쿠의 하이쿠는 절실하게 와 닿는다.
스스럼 없던 인간관계에 균열이 오기 시작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무 데도 안 가고
아무도 안 오는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허수아비
소매 속에서
-지게쓰
시인의 상상력이란!
그렇다면 나는 가을이 허수아비 소매 속에서 울고 있다고 해석하겠다.
안 그래도 요즘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처서라는 절기가 되면 신기하게도 모기가 들어가고 귀뚜라미가 나온다고 했다.
소리를 내어 가을이 왔다는 걸 알리는 건 수컷이다.
수컷이 앞날개를 마찰시켜서 내는 청아한 소리가 우리 귀에는 귀뚜르르 귀또 리리하고 들리는 것이다.
풀벌레 소리 하나에도 계절을 알게 되는 낭만은
정신없이 사는 도시인들에게는 없다.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 알 수 있을까?...
풀벌레여
울어서 업보가
다 지워진다면
- 오토쿠니
얼마나 울어야 업보가 지워질까? 미련스럽게 그만 울거라...
울어서 없어질 업보가 아니다.
울어서 업보가 다 지워진다면 아니 울 풀벌레가 어디 있을까?
나도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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