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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내 맘대로 읽기

10월에 어울리는 하이쿠

by 나?꽃도둑 202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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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어느 저녁

 


        시월이어서
            아무 데도 안 가고

              아무도 안 오고

 

                  -쇼하쿠

 

 

시월이면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미게 된다.

이제 곧 닥칠 겨울의 문턱에서 잠시 주춤하며 서 있는 셈이다.

날이 추우면 마음까지 얼어붙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내가 그러한데 너는 오죽할까?...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발이 묶여 있는 요즘, 쇼하쿠의 하이쿠는 절실하게 와 닿는다.

스스럼 없던 인간관계에 균열이 오기 시작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무 데도 안 가고

아무도 안 오는



 

시월 어느 바람 불던 날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허수아비

            소매 속에서

 

             -지게쓰

 

 

시인의 상상력이란! 

그렇다면 나는 가을이 허수아비 소매 속에서 울고 있다고 해석하겠다.

안 그래도 요즘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처서라는 절기가 되면 신기하게도 모기가 들어가고 귀뚜라미가 나온다고 했다.

소리를 내어 가을이 왔다는 걸 알리는 건 수컷이다.

수컷이 앞날개를 마찰시켜서 내는 청아한 소리가 우리 귀에는 귀뚜르르 귀또 리리하고 들리는 것이다.

풀벌레 소리 하나에도 계절을 알게 되는 낭만은 

정신없이 사는 도시인들에게는 없다.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 알 수 있을까?...

 

 

 

 

분홍빛 노을에 물든 억새 

 

 

                   풀벌레여

                     울어서 업보가

                      다 지워진다면

 

                       - 오토쿠니

 

 

얼마나 울어야 업보가 지워질까? 미련스럽게 그만 울거라...

울어서 없어질 업보가 아니다.

울어서 업보가 다 지워진다면 아니 울 풀벌레가 어디 있을까?

나도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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