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길을 가다가 빵구 씨를 만났다.
빵구 씨는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고 곧 달려갈 자세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발견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딘가를 바라보며
팔 하나는 이미 발 보다 앞으로 나가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한쪽 팔이 줄에 묶여 있어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어디 가시려구요?"
나는 빵구 씨에게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몇 사람이 빵구 씨 앞을 지나며 킬킬거렸다.
"빵구똥구네!"
분명 이름이 빵구 씬데 빵구똥구라니.... 남의 이름을 함부로 바꿔서 불러도 되나?...
그것도 유희적 대상으로 삼아 킬킬대다니 정말 예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지나가자마자 나는 빵구 씨 앞에 섰다.
"한 쪽 팔은 왜 묶인 거예요?"
빵구 씨는 금방이라도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냥 무작정 달려보는게 소원이예요..."
"제가 그 줄을 끊어드릴까요?"
빵구 씨는 가만히 나를 보았다. 나도 가만히 빵구 씨를 보았다.
"아니요..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어차피 멀리 가지도 못할 걸..."
빵구 씨는 알 수 없는 말을 뇌까렸다.
어차피 멀리 가지도 못하다니... 자유를 준다고 해도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없다니 이건 무슨 말인가?
"그냥 가고 싶은 대로 가세요. 하고 싶은 대로 해봐요."
나는 빵구 씨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빵구 씨는 힘없는 목소리로 나즈막히 말했다.
"어차피 난 빵구난 인생이라구요..."
답답했다. 어차피 빵구 난 인생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냥 일단 달려보던가 하지 그 자리에서 서서
자신을 단정해버리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할 노릇이었다.
빵구 씨는 울고 싶은 건지 웃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누가 누구에게 주는 자유인가요? 정말 내게 진짜 자유를 줄 수 있나요?"
나는 진심으로 빵구 씨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빵구 씨의 반론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그에게 자유를 줄 자격이 있는 것인가?
또 자유란 몸과 마음의 구속이 없는 상태이기도 한데 정말 그런 자유를 줄 수 있다는 말인가?
빵구 씨의 마음은 이 곳을 벗어나고자 하고, 몸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나 역시 또 다른 빵구 씨였다.
온전한 자유란 없었다. 소극적인 아주 소극적인, 매인 줄 길이 만큼의 자유가 내게 있었다.
무엇이 되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욕망과 관련된 자유,
자유롭게 표현하고 모든 자발적 행위들과 일상적 자유를 경험을 통해 이해한 게 전부다.
그러면서도 자주 딜레마에 빠져 있고, 모순적인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나오면서 빵구 씨가 스스로 줄을 끊고 가고 싶은 대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끊어야 할 줄에 대해 생각하면서...
'시와 그림, 내 맘대로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월에 어울리는 하이쿠 (17) | 2020.10.10 |
---|---|
종이 컵 (8) | 2020.10.05 |
[그림] 키스 / 구스타프 클림트 作 (3) | 2020.09.29 |
마그리트의 <보상받은 시인>그림 읽기 (18) | 2020.09.25 |
흰여울마을 묘박지 (2) | 2020.09.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