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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건져올린 에세이

이별의 노래

by 나?꽃도둑 2020. 10. 19.

 

 

 

 몇 년 전 어느 날의 일입니다. 늦은 귀가여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그때 어느 한 남자의 고독한 시간과 마주쳤던 일입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인 4단지와 2단지 사이에는 10미터 남짓한 다리 하나가 있고, 그 밑으로는 장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날은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오후 늦게 그쳤던 걸로 기억합니다. 퇴근하는데 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다리를 막 건너려고 하는데 개울을 따라 난 길을 걸어 올라오던 한 남자가 보였습니다. 조금 비척거리는 걸로 봐서는 술자리가 끝난 뒤 귀가 중인 것 같았습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남자는 배가 조금 나온 사십대 중반이나 후반 정도로 보였습니다.

 내가 다리 위를 거의 지났을 무렵, 남자는 다리 밑을 막 지나는 게 보였습니다. 오른쪽으로 틀어 나는 개울을 따라 난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건너편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비 온 뒤라서 그런지 안개가 뿌옇게 끼어 있어서 개울 건너편 남자는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은데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 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그 노랫소리는 남자의 가슴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소리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의 가슴을 풀어헤치고 부르는 노랫소리였습니다. 사연은 알 수 없지만 회한과 그리움, 흐느낌과 쓸쓸함이 묻어있는 속이 훤히 비치는 노랫소리였습니다.

 

나는 세상을 향해 새하얀 꽃잎을 활짝 열어 놓고 있던 매화나무 아래 섰습니다.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봤더니 교교한 달빛은 오간 데 없고 가로등 불빛만이 매화를 비추고 있더군요. 그 남자는 떠나고 세상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해졌습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오가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길 위에 홀로 서 본 적이 있나요? 사는 게 번잡하고 원하든 원치 않든 어딘 가로 마냥 끌려가다가 이렇게 홀로 서면 내가 보이는 시간 위에 말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어울려 눙쳐도 결국은 혼자라는 걸 느끼는 시간이 절실하게 다가올 때가 있나 봅니다. 그때 제가 그랬습니다. 남자의 노랫소리는 아릿하게 가슴속에 남겨졌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눈물이 났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마주침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걸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개울물이 바닥을 훤히 드러내며 그 몸에 제 주위의 모든 것을 담아 내듯, 그 남자를 통해 삶의 페이소스와 아릿한 고통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바닥을 훤히 드러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삶의 한 부분, 꼭꼭 감추어둔 마음의 아주 작은 조각하나를 풀어냈겠지만 그 날 내가 본 건 솔직한 한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위로 받지도, 이해 받지도 못하는 일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음을 턱하니 내려놓을 데도 없고, 내 마음 같이 알아주는 사람도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사는 게 바빠서 나와 주위를 돌아보지도 못한 채 가슴을 꼭꼭 동여매고 어딘가에 자신을 숨겨두고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오래 남는가 봅니다. 슬그머니 한 쪽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는 토닥토닥 해주고 싶은 한 사람과의 만남은 저에게 그렇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 노랫소리는 제 가슴 안에서 아직도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출처 유튜브 chk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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