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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건져올린 에세이

지하철 에피소드 2

by 나?꽃도둑 2020.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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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기 울음소리가 지하철 안을 가득 메웠다. 태어난 지 몇 달이나 되었을까? 포대기 안에서 두 주먹을 쥐고 팔 다리를 뻗대며 울어댔다. 자그마한 체구의 젊은 엄마는 아기를 달래려고 연신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자리를 양보했다. 그런데 엄마가 자리에 앉자마자 아기는 더욱 악을 써대며 울어댔다. 아기의 엄마는 얼른 일어나 아기를 달래느라 애를 쓰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기와 엄마의 소통의 부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역에서 바로 내렸으니까 말이다.

그래 그래. 내리자... 내리자.......”

아기는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울음을 딱 그쳐버렸다.

 

2

노란 머리에 파란 눈 아가씨들 너무 떠드는 거 아니요? 거 조용히 좀 하시오, 동방예의지국에 와서....어험.”

아저씨는 대뜸 외국인 두 여자에게 한 소리 하신다. 아가씨들 영문을 몰라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깨를 들썩인다. 그리고는 낮은 소리로 쉴 새 없이 주고받는다. 동방예의지국에 대한 예를 다하면서 말이다.

 

3

옆에 앉은 남자의 다리가 자꾸 내 다리에 닿는다. 몸을 한 번 비틀어 신호를 하면 그제야 다리를 오므리고 앉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어느새 홍해 갈라지듯 떠억 벌어져 있다. 정말 그 중앙에 깃발을 하나 꽂아두고 다리를 줄로 꽁꽁 묶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어쩔 것이냐? 이 쩍벌남들의 완전자동 시스템을…….

 

4

그동안 지하철에서 배출된 새로운 종들이다. 쩍벌남, 쩍벌녀 개똥녀, 야동남, 막말남, 막말녀, 무개념녀, 코피남, 막장남, 추태남, 똥싼녀까지 그들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이것도 진화중이라면 진화중인 셈인 것이다. 물론 이들이 자연 도태되어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명맥은 유지할 듯 싶다.

 

5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은 딴 생각으로 복잡하다.

지하철 안에서 시선처리도 어렵고 눈을 감고 있기도 싫을 때 책을 보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게 뭔가....

차라리 책을 접고 생각을 하던지...멀티도 안되면서 미련 떨긴...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한다는 것, 무아지경 물아일체는 제정신이 아닐 때만 가능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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