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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건져올린 에세이

계절을 느끼는 삶

by 나?꽃도둑 2020.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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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제법 선득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 깊어지기 전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게 아침저녁의 기온차다.

간절기인 이때쯤 찾게 되는 옷이 가디건이다.

옷장에서 꺼내면서 또 한번의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하는 셈이다.

 

텃밭학교에 근무하기 전에는 사실 계절을 온전하게 느끼지 못했다.

자연과 단절된 아파트 생활과 아스팔트 도로 위와 건물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계절을 체감하는 거라곤 고작 간절기 때 느끼는 기온차와 가로수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다였다.
어떤 해에는 벚꽃이 진 후에야 벚꽃이 핀 걸 보지 못한 걸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만큼 계절에 대해 무감각하게 지내는데 익숙한 삶이었다.

 

 

 

긴산꼬리풀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삶이란 오롯이 자연속에서만 가능하다.

고작 가로수의 변화 하나만으로 계절을 느끼기엔 너무 빈약한 체험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발명되기 전, 인간은 몸으로 계절을 체감하며 살았다.
때에 맞춰 농사를 지었고 자연의 변화나 현상에서 법칙과 지혜를 터득했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에게 정복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모든 동식물의 터전인 자연환경을 마구 파헤지고 파괴하고 이용하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 종착지에서 얻은 물질만능주의는 자연과의 단절을 가져왔고 인간은 점점 소외되어 갔다.

 

 

 

강아지풀

 


고층빌딩으로 하늘을 가리고 아스팔트로 된 길 위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무엇을 사색할 수 있을까..

길가에 핀 꽃이나 풀 한포기에도 감응할 줄 모르는 삶은 반생태적 환경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자연과 단절된 삶은 신체든 정신이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알게모르게 병들었거나 병들어 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만성피로 증후군정신 가출 증후군번아웃 증후군 등으로 정신 건강에 문제를 안고 있는데 그 원인조차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 
메마른 감성과 불나방처럼 화려한 볼빛 주위만 맴돌고 있는 한 우리의 삶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타성에 젖어 사는 삶이 온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도 한때 그랬다.

계절이 바뀌어도 무감각하게 지나가게 되고, 교감할 수 없는 불감증의 날들의 연속이었다.

자연의 향유? 그거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게 많고 행복해 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느꼈던 행복감과 만족감은 너무나 피상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오감이 열리지 않은 채 관념적으로 그 모든 것을 느끼고 생각하였다.

체험해보지 않은 삶을 이해한다는 건 가짜에 가깝다. 암투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암을 이해할 수 없듯이

자연의 신비로움과 그 변화를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자연이 주는 치유력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

 

 

계절을 느끼며 산다는 것,

그건 관념적일 수 없다. 매우 예민한 감각과 섬세한 눈길로 대상을 바라보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타성에 젖을 수가 없다. 매일이 새로운 발견 속에 있는 아이처럼 천진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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