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러질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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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다.
이 시로 초등학교 아이들과 학교에서 수업을 했었다.
대추 한 알을 자신으로 치환시켜 패러디 시를 써보게 하는 수업이었다.
자료를 남기지 않아서 아이들의 글을 여기에 실을 수는 없지만 재밌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던 건 분명하다.
아이들은 시를 쓰면서 킬킬대기도 하고 진지하게 몰입하기도 했다.
진심으로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고심하는 듯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런 식이었다.
나ㅡ 홍길동 / 홍길동
나, 홍길동은 저절로 뚱뚱해질리는 없다
내 안에 피자 오십 판
내 안에 통닭 백 마리
내 안에 떡볶이 수천 개
내가 이렇게 혼자서 컸을리는 없다
내 안에 엄마 잔소리 열두 달
내 안에 할머니 포옹 백만 번
내 안에 아빠의 한달 용돈 이 만원
나는 그림책으로 철학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자신을 소개할 때 학교, 학년, 반, 사는 곳이 전부인 아이들을 위해
앵무새 같은 대답을 하는 아이들을 위해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고 싶었다.
아이들의 좁고 단조로운 삶의 세계가 안타까웠다.
학업에 시달리며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장소를 갖지 못한 아이들에게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다.
틀에 갇힌 아이들이 마음껏 얘기하고 생각하고 우주 끝까지 날아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싶었다.
가끔은 성공했고 가끔은 실패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성장했다.
나 역시 아이들을 통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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