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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내 맘대로 읽기

르네 마그리트의 <현재>를 읽다

by 나?꽃도둑 2020.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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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그리는 철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르네 마그리트는 그림에 가장 적절한 제목은 시적인 것이다 라고 했다. 시적인 제목은 무엇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들게 한다고 하였다. 그는 화가라는 이름보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는데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 역시 생각에 빠져들게 만들곤 한다. 즉 감상자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퍼즐 같기도 하고 수수께끼 같기도 하다. 무수한 이미지와 상징은 우리에게 건너오면서 제대로 전달되기도 하지만 의미가 왜곡되기도 하고 좌절되기도 한다.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파이프 그림을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 라고 했다. 사물의 외연 즉 상징일 뿐이지 진짜 파이프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했던 것이다. 이것이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는데 결정적인 힌트가 된다. 

그 무엇을 상상하든 감상자의 자유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든 그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무료한 일상에 마그리트의 그림은 선물 같기도 하고 작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현재>는 매우 재미있는 그림이다. 독수리가 높은 곳에 앉아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있다. 고독하고 의연해 보인다. 

뒤로는 노을진 하늘과 먼산이 보이고 발 옆에는 심연의 꽃이 놓여 있다. 사냥에서 돌아와 이제 곧 저녁을 맞기 직전의 모습 같아 보이는데 특이한 점은 낡은 외투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낡고 무겁고 몸에 맞지도 않은 옷은 독수리가 짊어진 삶의 무게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일 것이다. 매일 아침 눈뜨면 사냥을 떠나야 하는 고단한 삶이지만 독수리는 울지 않는다. 의연하고 묵묵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이다. 

 

 

 독수리는 보통 70년을 살지만 중간에 한 번 처절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고 한다. 깃털이 무거워져서 날기 힘들고 무디어진 발톱 때문에 사냥하기가 힘들어지면 독수리는 삶과 죽음에 기로에 서게 된다. 살기 위해서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내야 하는데 바위를 쪼아 부리를 깨트려 피투성이가 된 채 새부리가 나올 때를 기다린다고 한다. 새로나온 부리가 단단해지면 그 부리로 무뎌진 발톱과 깃털을 뽑아낸다고 한다. 

 

<현재>에서 나는 아버지의 모습과 닮아 있음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좌절과 무기력한 상태를 보았고 다시 삶을 시작하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한 번도 우리들 앞에서 울지 않았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고독하고 의연하게 삶을 살다가 올해 돌아가셨는데 비로소 저 무겁고 낡은 외투를 벗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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