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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내 맘대로 읽기

마그리트의 <치유자>를 읽다

by 나?꽃도둑 2020.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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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그리트 그림집을 보다가 문득 <치유자>에서 멈췄다. 마그리트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로서 그의 그림은 불안한 내면과 공포를 표현하는 특징이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어머니의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14세 소년이던 마그리트에게 어머니의 자살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강렬하게 낙인됐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그의 작품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흰 천을 뒤집어 쓴 연인과 몸에서 떨어져 공중에 떠 있는 얼굴들, 몸 속을 가득 메운 자연과 사물들, 떠다니는 의미와 상징들,  사물들 간의 부조화가 가득한 그의 그림들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보여주듯 기괴하고 초현실적이다. 

 

무위식의 발현인 꿈은 의미있는 연결망으로써 한 인간의 욕구와 불안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매우 사적이고 복잡미묘하고 심층적이다. 

그래서인지 마그리트의 그림을 읽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 무모하지만 그림 읽기를 시도하려고 한다. 이 그림에서 왜 멈추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방식대로 느끼고 생각한 지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가 납작한 바위에 앉아 있다.  한 손엔 지팡이를 짚고 있고 천을 두른 듯한 옷을 입고 있다. 아주 편안한 자세이다.  머리 위로는 초승달이 떠있고 모자는 얼굴 없는 목위에 무심하게 얹혀져있다. 그는 어스름 저녁에 길을 가다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바위에 앉아 불켜진 집들을 바라보거나 기분 좋게 부는 바람을 느끼거나 꽃이나 풀 향기를 맡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방랑자일지도 모르겠다.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렸고, 별과 초승달, 바위와 풀, 하늘과 구름의 또 다른 이름으로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자연이자 치유이자 동경일지도.

그러고보니 짚고 있는 지팡이가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다. 낡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분명 그리스신화의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아닐까?... 치유자로서의 존재를 마그리트는 자연과 지팡이로 표현했을 거라는 지극히 자의적인 감상이다.

무엇보다 내 눈길이 머문 곳은 바로 그의 가슴이다.

주변은 어두운데 가슴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뭉게 뭉게 떠 있다.

맑고 파란 하늘 속으로 손을 뻗어 보고 싶을 만큼 유혹적이다. 아니 날아올라도 좋을 듯하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날아오를 수만 있다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만 같다. 

...내가 그림을 대하는 자세는 늘 이렇다. 멋대로 상상이 뻗어가게 내버려 둔다는 점이다.

작가가 무엇을 그리든 붓을 놓는 순간 그림은 이미 작가를 떠나버린다. 모든 예술작품의 운명이 그러함으로 오독은 감상자의 권리와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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