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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앞에서 서성거리다

<배우는 배우다>- 일단 뜨고 보자,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삶

by 나?꽃도둑 2020.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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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뜨고 보자,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인생도 있다. ‘일단이라는 체념 혹은 맹목적 의지는 모멸감도 수치심도 견디게 하는 힘을 지닌. 여기 연기자가 꿈인 오영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연극무대에서 연기와 생활체험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문제적 인간이다. 대본대로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출 줄 모르는 연기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오영은 결국 연극무대에서 쫓겨난다. 자신의 체험과 거리두기를 할 줄 모르는 연기자, 소통되지 않는 자기세계에 빠져 감정에만 몰입하는 오영은 아무도 밟지 않은 신대륙인 셈이다.

 

 사실 자아보다 큰 벽은 없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 하기 싫은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는 분명 자존심이 버티고 있다. 오영은 재기를 노리는 연예기획자의 손에 이끌려 영화바닥으로 들어가지만 술대접, 성상납 등 자신의 몸을 이용해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마지못해 나간 자리에서 오영은 심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낀다. 기획자는 일단 뜨고 보자, 그러면 니가 살고 싶은 삶은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고 설득한다. ‘일단 뜨는 일에 동원된 것은 권력과 돈이다. 성공으로 가는 길에 뿌려진 그 모든 것들의 추악한 두 얼굴 사이에서 오영은 갈팡질팡 길을 잃어버린다. 속도만이 있는 삶, 오영의 배우 인생을 잘 그려낸 <배우는 배우다> 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감독상을 수상한 <러시안소설>을 만든 신연식 감독의 작품이다. <러시안 소설>보다는 한결 단순해진 구성과 이야기 전개는 영화에 몰입하기에 충분하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고 했던가?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 삶을 사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는 몸과 마음은 수많은 발자국에 짓이겨져 상처투성이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급하게 자신을 세우고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자기파괴와 밑바닥까지 내려간 타락이었다. 일단 살고봐야하는 절박한 본능 앞에서 배우의 연기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생생함을 획득하게 된다. 신인답지 않게 생생한 연기를 보여준 아이돌 스타 이준의 재발견과 감독이 전하고자 한 삶과 영화, 영화와 현실 사이에서 얼만큼 거리두기를 하며 살고 있는가와 또한 우리 삶에는 연기 같은 요소들은 없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 맞다, 삶이라는 게 어떻게 때묻지 않고 고상하고 이쁘기만 할까? 그건 어쩌면 가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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