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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앞에서 서성거리다

<카얀> - 당의정 속에 숨겨진 인생의 쓴맛

by 나?꽃도둑 2020.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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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얀

‘카얀’이라는 레바논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이혼녀 하닌의 하루 하루는 바쁘고 고달프다. 두 딸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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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달프다. 달달한 당의정을 입힌 약처럼 인생의 쓰디씀 위에 덧입혀진 당의정 같은 요소들에 우리는 가끔 눈멀고 미혹에 빠져 허우적댄다. 사랑도 그러하고, 꿈도 그러하고, 한때의 꽃다운 젊음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마음도 그러하고, 그러하고...또 그러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러한 당의정으로 인해 우리는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땅에서 발을 가장 멀리 떼고 오르는 순간, 이적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은 행복감으로 충만한 상태와 기쁨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살아보면 안다. 그게 인생의 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원래 인생은 고의 연속이라고 하였다. 매번 넘실대거나 미친듯 몰아치는 파도를 넘으면서 멈출 수 없는게 인생이다. 그래서 더 많은 당의정이 필요한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레바논 식당 카얀을 운영하는 이혼녀 하닌 역시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여자다. 장사가 되지 않아 몇달 째 집세가 밀려 있고, 두 딸의 학비를 벌어야 하고, 종업원들과 손님들의 뒤치닥거리를 해야하는 바쁘면서도 고달픈 인생이다. 탈출구도 없어 보이고, 대안도 없어 보인다. 게다가 하닌은 연하의 약혼자의 돈문제 까지도 신경 써야한다. '카얀'에는 아랍식 물담배와 술을 즐기는 남자들이 대부분인 아랍식 식당이다. 아무리 캐나다에 있는 식당이라고 하지만 여자 혼자서 남성중심적인 문화속에서 자라온 레바논 남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하닌이 식당을 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은 꿋꿋하면서도 지극히 여성성의 강조다. 미니스커트와 하이힐로 자신을 무장하고 언제나 생기있는 모습으로 손님들을 대하지만 정작 그녀의 진짜 모습은 거울 속에서 드러난다. 지쳐있는 중년의 삶이 고스란히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하닌 자신이 살아내는 삶과 타자가 바라보는 삶 사이에 거울은 양면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

 

카메라는 식당안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이 하닌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그 주변의 에피소드를 담아낸다. 그리고 하닌의 표정을 클로즈업해서 조용히 마주하고 있는 사람처럼 기다려주기도 하고, 뒤를 따라가기도 한다. 하닌역을 맡은 오울라 하마데의 표정연기는 아주 섬세하고 사려깊다. 연기에 대한 사려, 삶에 대한 사려로 보인다. 이러한 배우를 캐스팅해서 작업을 함께 한 감독은 이란 태생이지만 캐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여자 감독인 마리암 나자피다. 여러 편의 단편을 연출하였고, 2010년에 연출한 <이웃>은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였으며, <카얀>은 그녀의 장편 데뷔작이다. 주류속의 비주류, 지배문화 속의 다문화의 문제를 눈여겨볼 줄 아는 감독은 <카얀>에서 외부인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아랍식 식당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전부 동족이다.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로 숨쉴 수 있는 공간인 카얀에서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신을 위무한다. 이질적이지 않고 동질화되어 있는 문화속으로 그들은 빨려들어오지만 여주인인 하닌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 대해 답답함과 회의를 느낀다. 남몰래 피우는 담배 연기는 그녀가 뱉어내는 한숨의 속도만큼 멀리 날아간다. 식당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삶의 비루함, 경제적 어려움, 피곤하고 지쳐있지만 힘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표정과 몸동작으로 표현할 때는 그 무게가 느껴질 만큼 그녀의 연기는 탁월하다.

 

현재진행형의 삶을 되돌릴수는 없는 법, 당의정으로 씌운 삶이 걷어질 즈음 인생의 쓴맛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약혼자의 배신으로 그녀는 비로소 삶의 터전을 벗어나 무작정 차를 몰고 거리로 나선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순간에 말이다. 사업의 부진함을 벗어나기 위한 타계책으로 식당에 가수와 무용수의 공연이 있는 날에 하필이면 그녀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된다. 왜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가 삶이여,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 가을,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계획이 있던가, 인생의 쓴맛을 본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내용이지만, 인생이 달달하다고만 생각하는 설 익은 인생이 보면 지루할 영화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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