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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셀프 - 우리는 흔들리며 피는 꽃이다

by 나?꽃도둑 2020.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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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얀 마텔 지음, 황보석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7월

 

셀프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이 1996년에 쓴 첫 장편소설. 한순간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이 바뀌어버린 주인공 나의 30년에 걸친 삶의 이야기이다. 정신과 육체의 대립과 조화, 갈망의 본질을 섬세하고 유려한 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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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는 한마디로 성이 바뀐다는 기발한 상상력에 당혹스럽고, 예리하고도 아름다운 문장에 살을 에인 듯한 통증을 맛보게 하는 소설이다. 그렇다고 트랜스잰더 이야기냐고? 아니다. 단지 젊은 소설가이자, 세상을 누비는 여행자이며, 남자이거나 여자인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아주 어렸을 적의 기억을 더듬어, 현재 서른이 되기까지의 삶을 규정짓는 많은 것들 가운데 가장 큰 덩어리인 성(sex)과 자기를 이루는 (self) 모든 것에 대해 탐구하고 탐색한 이야기이다. 남자에서, 여자로, 다시 남자로의 성이 바뀌고 하는 소설이 황당하냐고? 아니다. 전혀 황당하지 않다. 그게 얀 마텔의 저력이다. 캐나다가 국적인 그의 소설에서 중남미 소설의 특징인 마술적 리얼리즘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영화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분위기를 닮은 그의 생김새도, 모두 흥미로운 사실이다.

 먼저 그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미리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이 책은 꼼꼼히 씹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다. 되새김질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도 될 만큼의 生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 질긴 섬유질을 함유하고 있다.
둘째, 섹스에 대한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고 세부묘사로 인해, 포르노로 착각하여 책을 집어 던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결국 그것은 삶의 원천이자 솔직하고도 선이 분명한 자기 고백임을 알게 된다. 뒷부분에 나오는 강간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읽으면 이해가 갈 것이다.
셋째, 너무 눈에 힘을 주고 심각하게 읽거나 논리적으로 따질 필요가 없다. 그것은 픽션이고 마법이며 말하기의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 아주 독창적이고 지적이고 위트있고 풍부한 이야기로 꽉 차 있다.

 《셀프》는 1,2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은 어릴 적의 악동 짓을 통한 자기표출과 특별한 기억들과, 수음의 발견, 부모가 교통사고로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아 자신의 18세 생일 날, 돌연 여자로 성이 바뀌는 체험과 여행지에서 만난 여러 사람과의 부대낌, 사랑과 섹스, 소설 쓰기와 언어에 관한 이야기와 강간으로 인해 다시 남자로 돌아오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2장은 그야말로 단순 명료하게 자신이 누군 지에 대해 밝히고 있다.
 
 자, 그럼 그 이야기 속으로 살짝 들어가 보면, 소설 속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여자와 남자 단 두 가지 성 밖에 없다는 것에 의문을 가진다. (발달과정에서 가장 빠른 것이 성의 눈뜸이 아닐까?) 무슨 사물이든 간에 그런 줄 알고 엄마에게 질문을 해대다가 텔레비전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상반되는 것의 의미에서 보완된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 그것이 사랑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자신에게 꼭 맞는 성기를 찾아, 아니 사랑을 찾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하물며 모든 사물에 성이 있는 프랑스어로 눈을 돌리기까지 했을까? 또한 수음의 발견으로 인해 내부에서 터지는 폭탄을 성의 결합으로 인해 더 한층 파괴력을 지닌 폭탄으로 키워 가는 과정 또한 흥미롭고 진지하다.

 셀프를 찾기까지 셀프는 아직 미완성 상태다. 성 정체성의 혼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생김새나 언어로 규정되는 인종과 국적에 대한 열등의식 또는 우월감. 떨리고 불안전한 사랑에 대한 경험들이 자신의 내부에서 요동 치거나 충돌하면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셀프다. 얀 마텔은 그 과정을 섬세하고도 통찰력있게 그려 내었다. 또한 지렁이의 양성적인 면과도 같이 암컷이기도 하고 수컷이기도 한 우주적인 기적을 소설을 통해 보여 준다.

 성을 바꾸어 체험과 역할을 하게 한 점은 분명 작가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  읽어 내는 건 독자의 몫이라고 본다. 결국 이 소설은 '인간(혹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톨스토이의 접근방식과는 분명히 다르다. 얀 마텔은 배꼽 아래에서 생의 비밀을 찾아 헤맸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긴 겨울이 끝난 어느 아름다운 봄날에 자신의 생식기를 드러내 놓고 냄새를 풍기며 피어 있는 꽃과도 같이, 자연스럽고도 건강한 일과 같은 것이라고 보았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야성은 아름답고 건강하다는 것을, 또한 억압과 강제적인 야성은(소설 속에서는 강간으로 이해됨) 누군가를 살인하는 것과 같은 힘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강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 또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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