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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고흐, 내면의 풍경을 읽다

by 나?꽃도둑 2020.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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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1999년 6월에 출간되어 지금까지 약 10만 부가 판매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반 고흐, 영혼의 편지의 개정증보판이다. 테오의 편지를 포함한 40여 통의 편지와 그림들이 추가로 실려 있고, 편지에 언급한 그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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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미술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툭 불거진 광대뼈, 움푹 들어간 눈, 한 쪽 귀를 흰 천으로 싸맨 한 남자의 초상화를 선생님께서 설명을 하시는 동안,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책장을 덮은 일이 있었다. 알 수 없는 우울이 출렁대던 청록색의 깊은 눈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때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고흐의 아주 단편적인 일화와 생애였다. 그렇게 고흐는 사춘기 감수성에 한 획을 긋고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묻혀 서서히 잊혀져 갔다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고흐 자신이 직접 쓴 글에다 관련 그림들이 칼라판으로 되어 있는 책과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란... 세잔을 읽고 난 뒤의 감흥이 남아 있어서 다른 화가의 삶과 영혼을 들여다볼 기회다 싶어 주저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도중에 숨을 고르며 여러 번을 되풀이 해서 읽을 만큼 고흐의 영혼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책읽기였다.

 이 책은 신학 공부를 그만두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5년 전인 1872년부터 권총자살 사건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18년에 걸쳐 동생 테오와 그 밖에 어머니와 여동생, 고갱, 베르나르 등 여러 친구에게 쓴 편지글로 이루어져 있다. 유별난 성격으로 가족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소외와 버림을 받았지만 끝까지 고흐편에 서서 경제적 도움까지 준 남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단순한 안부 형식의 글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화가로서의 고뇌와 예술 혼이 담겨 있는 글이다. 또한 그림뿐 아니라 철학적 사고와 자기 생각이 분명한 필력을 보여 준다. 진지한 독서의 영향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가 많은 책들을 읽어 내었음을 테오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알 수 있다.
 난 이적지 고흐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을 했었다. 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고갱과의 다툼 끝에 귀를 잘랐고 '해바라기'와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렸고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광기와 발작으로 정신병원을 들락거렸던 미치광이 화가, 그랬다 그게 전부일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한 사람의 내면의 풍경이 어땠는지를 안다는 것은 곧 이해한다는 것과 소통의 문제인 것인데 핵심을 피해간 표면적 사실들만 끌어안고 그 동안 고흐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이 책을 통하여 깨달았다.

 고흐가 세상을 떠나자 친구 고갱이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 '그 가여운 친구가 자신의 광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안다'고 했듯이 고흐의 삶은 한 마디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림에 대한 집념만큼 경제적 여건은 따라 주지 않았고 발작, 환각 증세까지 광기보다 고통이 더 강하다고 토로할 만큼 고흐는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그런 그에게 그림은 탈출구이자 구원의 빛이었지만 고흐의 그림은 당대에선 인정 받지 못했다. 화랑 위주의 주류 화풍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린 관계로 몇 사람만이 알아주는 그런 화가였다. 살아 있을 때 단 한 점의 유화만이 팔렸지만 고흐는 그림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색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색에서 광휘가 나오길 바랐고 서로 보완해 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함으로써 연인의 사랑을 보여 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를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등, 색에 대한 탐구로 자신이 지향하는 즉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표현해서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그림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고흐를 읽으면서 누구나 영혼의 질량은 같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예술가들은 불우하다고 자조 섞인 말을 내뱉은 고흐의 말처럼 예술은 열정과 결핍 위에서 완성되는 게 아닌가 싶다. "예술은 보이게 하는 것이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다"라고 한 클레의 말처럼 고흐 또한 사진처럼 똑같은 그림 그리기를 비판하였고 하루를 거의 표현방식과 색에 몰두하였으니 정작 미치지 않고서는 그 열정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또한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자체보다 한끼의 빵을 더 걱정했더라면, 굶는 게 두려워 물감 사는 걸 포기했더라면, 그림에 대한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힐 때 거침없이 붓질을 할 수 있었을 것인가?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떤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무언 가에 사로잡힌, 격렬하고도 열정에 찬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가 살아 있는 것이다. 이적지 고흐만큼 밤하늘을 아름답게 그린 것을 본 적이 없다. 나선형의 구름들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돌출되어 빛나는 별들, 그의 그림들은 강렬한 색채와 터치가 살아 있다. 한 편에선 그가 압셍트(술 종류)중독 상태에서 그렸을 것이라는 추측설도 있다. 어찌 되었건 고흐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화가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고 자다가도 풍경을 보기 위해 일어날 정도였으니 그는 늘 그림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들뜬 상태였음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경지에 오른 이들의 삶은 격정적이고 열정에 휩싸여 질풍노도와 같은 광기를 뿜기도 하는 걸 보면 적당히, 정상적인 틀 안에서 눈치껏 타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보여 준다. 정상적이고 이른바 옳다고 정의하는 한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질서를 거부하고 혼돈을 조장하는 일에 도저히 나설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미쳐야 할만큼의 열정도 끈기도 재능도 광기도 갖고 있질 않으니 우리 범속한 사람들은 그저 그들의 삶을 엿보며 불가해하고 복잡 다단한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얼마간의 위안과 존경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별을 희망이라고 한 고흐,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라고 테오에게 썼듯이 이 또한 내가 지향하는 삶이지만 고흐만큼 고독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으니 아주 사소한 일에조차 엄살을 부리며 산다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을 해 본다. 끝으로 고흐가 친구 라파르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예술은 영혼으로부터 솟아나온 것 아닌가'라고 했듯이 예술이란 정신의 표현이며 인간의 문제임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고흐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그 글을 여기에 옮겨 본다.
'예술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단지 손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네. 더 깊은 원천으로부터, 바로 사람의 영혼으로부터 솟아 나온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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