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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강의 - 가슴으로 읽히는 책

by 나?꽃도둑 2020.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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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강의

자본주의 체제가 양산하는 물질의 낭비와 인간의 소외, 그리고 인간관계의 황폐화를 보다 근본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신영복 선생의 고전강의를 책으로 엮었다.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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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복 교수는 올해 63세다 겨울방학 때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저 겨울나무처럼 가만히 있고 싶다고 했다. 순간 그가 4년 가까이 독방에서 지내면서 벽을 마주하고 앉아 명상을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입을 굳게 닫고 내면 가장 깊숙한 중심부로 들어앉아 자기함몰이 아닌 자아도취나 자가당착도 아닌 자기발견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갔다.  온유하면서도 강한 정신적 세계를 구축한 한 인간의 모습에서 신이 마저 느껴짐은 왜일까? 삶의 변두리, 인간이 흘러갈 수 있는 가장 낮은 곳인 감옥에서 20년이라는 수감 생활을 통해서  깎고 깎여진 둥근 시간 속에 자신의 몸을 맞출 줄 아는 겸손과 절제를 채득한 탓일까? 시련을 견디며 악에(원망이나 자포자기 등) 편승하지 않은 그 온유한 성품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 

 1973년 3월에 신영복 교수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중용》을 여러 번 읽었으니 《맹자》《춘추》, 허균의 《호민론》《실학》등의 책을 읽고 싶으니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그러니 그의 동양철학 독서는 1968년 수감되던 얼마 뒤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동양철학에서 찾아낸 것이 '관계론'인데  그것은 철학적 개념보다는 신영복 자신이 몸소 겪으며 사유한 경험의 총체이다 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자신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된 가족과 선후배 그리고 제자들에게서 처음 '관계'라는 키워드를 찾아내었는지 모른다. 보고 만나고 아는 사이였으니 측은지심이 생긴 것이리라.
그는 늘 동양철학을 늘 곁에 두었다고 한다. 읽으면서 점점 경도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이 어떠했을까 짐작이 간다. 자유의 몸이 되어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10년 강의하고 속도, 효율, 물질이 인간성을 앞질러 가는 요즘에 과거가 아닌 미래모색이라는 궁극적 답을 발견할 수 있는 텍스트로 '고전읽기'를 하자며 《강의》텍스트를 전 국민 상대로 내놓았다. '관계론'이라는 화두를 던져놓고 무엇이 관계인가, 무엇이 참된 앎인가,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보다 사회구조 속의 관계론에 무게중심을 두고 신영복 교수는 논어를 통해 노자를 통해 맹자를 통해 조곤조곤 들려준다. 신영복 교수는 더 나아가 고전 다시 읽기로 '근대에 대한 반성' (서양은 중세 바로 보기 운동이 일어 났다고 한다) 과거를 그저 과거로만 묻어 버려야 하는 '시간에 대한 반성'으로 읽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 책은 내게 몇 가지를 일깨워 주었다. 첫째 동양철학의 전체적 흐름에 대한 이해이다  둘째 고전을 두고 자구해석이나 해설이 아닌 전체 속에서 키워드를 끄집어내어 '고전 다시 읽기'로서의 재해석을 한 점이다. 이것은 곧 학자들마다의 관점의 차이, 세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통찰력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셋째 동서양이 갖는(또는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알았다는 점이다
나는 되도록 책을 읽으면서 비판과 옹호의 두 축을 세워놓고 거기에 합당한 이유와 개념들을 가두려 한다. 신영복의 《강의》도 예외는 아니었다. 논어, 맹자, 노자, 장자, 순자,… 등에서 화두로 삼은 '관계론'의 관점이 모두에게, 어느 곳에나 적용될 수 있는 건지 의아심이 들었다. 현 사회는 신영복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물질이, 효율이, 속도가 인간성을 앞질러 가는 시대이다. 서구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운동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쟁도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저질러지고 그것이 패권주의로 나타나 말이 세계화이지 결국 물질 종주국으로의 속셈이 있는 것이다. 힘의 논리로 이루어진 세계화는 이미 서양적 사고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신영복 교수의 '관계론'이 현 사회에서 얼만큼 설득력을 지닐 것인가. 조화와 균형, 절제와 겸손, 도덕성과 인,의,예,지를 중시하는 동양사상이 다만 책 속에서만 함몰되어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 어떤 패러다임도 형성되지 않는 사상과 이론에 그치고 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이든, 생산현장이든, 세계시장이든 뛰어난 독창성과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 같은 한 개인이 세계의 시장을 석권하기도 하고 미국이라는 한 나라에 의해 세계가 좌지우지되는 형국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 현실은 일단 인정하자. 그렇다면 과도한 생산과 소비, 전쟁 등의 메커니즘으로 세계가 돌아간다면 그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문제인 것이다. 인간성의 황폐화, 지구의 황폐화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리라. 특히 요즘 아이들을 볼라치면 참을성도, 생각의 힘도 없는 거의 반 기계화된 머리와 정서를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이 물질에 반응하는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사유의 힘이 무엇인지도 모르거니와 별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나 아닌 누군가가 다 알아서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 중 하나인 기계의 힘은 막강하다. 뇌 세포를 경직되게 만들고는 나 아닌 타인을 먼저 생각한다거나 사유를 통한 자기성찰 따위의 접근을 아예 막고 있는 것이다.

물질이 정신에 앞서는, 독창성이 보편성에 앞서는 시대에 신영복 교수가 화두로 삼은 '관계론'은 삶에 대한 반성이자 시대적 당면 과제로 절실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소리가 아닌가.
지나친 염려도 희망도 아닌, 그의 《강의》를 읽다보면 내가 어느새 그의 생각에 동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강의》는 결코 어려운 책이 아니다. 나름대로 터득한 독법이랄까?... 《강의》는 가슴으로 이해하며 읽으면 잘 읽히는 책이다. 척박해지면 다시 이 책을 꺼내어 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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