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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황진이 - 늑대의 혼을 가진 여자

by 나?꽃도둑 2020.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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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1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8월

 

황진이 1

전경린이 이번에는 비극적 운명의 굴레에 저항하고자 했던 황진이의 삶을 재조명했다. 작가는 황진이에게서 근대 신여성의 시조를 보았으며, 자기주장과 자유를 추구하는 현대여성의 모습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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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황진이》의 저자 김탁환은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루는 역사소설의 경우 그 인물의 행적을 어떤 경로를 통해 얼마만큼 알아내는가가 작품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라고 했다.  김탁환의 《나, 황진이》는 전경린의 《황진이》를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김탁환의  황진이는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는 일인칭 소설로, 단지 흥미유발이 아닌 삶과 황진이의 세계관, 사상 등을 철저한 고증과 탐구를 통해 한 인간이 가져야 했던 삶의 고뇌와 진리를 향한 몸부림을 부각시켜 형상화하였다. 그러면 전경린의 황진이는 어떠한가. 황진이에게 내려진 두 가지 평가 중 여러 남자를 섭렵한 재주 있는 기생이 아니라 조선 중기 여성의 한계를 극복한 대표적인 인물로 그려놓은 점에서는 김탁환과 관점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2005년 오늘을 사는 우리가 과연 그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다만 야사에 전하는 바에 따라 그녀가 자유연애와 계약동거 등,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꾸려갔다는 사실에서 몰개성 시대에 우뚝 솟은 존재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가야금 보다 남성들의 악기였던 거문고에 능했고 노래와 시문에 능했고 아름다운 모습 자체가 위험 요소였던 그녀, 어쨌든 그녀의 삶이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건 주목할 일이다.
온갖 추측과 소문에 휩싸여 있었던 황진이, 그녀를 만나러 가자.


황진이의 본명이 진랑이라고도 전한다. 송도(지금의 개성)에서 태어났고 생몰연대는 정확하지는 않다. 아비는 황진사고 어미는 진현금이라 하는데 그들이 연을 맺는 장면이 이덕형의 《송도기이》에 전한다.
"어미현금이 자색이 있었다. 열 여덟에 병부교 아래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옷차림이 화려하고 얼굴이 잘난 남자가 다리 위에서 현금에게 눈길을 보내며 혹 웃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하니  현금이 마음이 움직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문득 사라지고 없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빨래터 아낙들이 모두 흩어졌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나타나 기둥에 기대어 노래를 부르고 물을 청하였다. 마셔보니 술이었다. 이로 인하여 두 남녀는 인연이 되어 정을 통하였다."
-이덕형은 갑진년(1604)에 직접 개성으로 가서 황진이의 가까운 친척인 서리(문서의 기록과 수발을 책임지는 아전) 진복으로부터 황진이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다. 여든살이 넘은 진복의 이야기는 황진이를 직접 만난 친척의 회고라는 점에서 다른 기록보다 훨씬 더 가까이 그녀에게 다가가 있다. 또한 황진이의 외가가 아전과 기생 집안이라는 게 나와 있다-


사내는 떠나고 현금이 혼자서 배를 불리우다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어미가 원래 기생의 몸이라 어려서부터 거문고, 시문, 법도들을 규방에서 자연스레 익혔으리라는 게 김탁환의 해석이다. 이에 반해 전경린의 황진이는 얼녀로서 황진사 집에 살다가 16세가 되자 스스로 기생의 길을 택하는 여자로 그려졌다. 나는 이 부분에서 김탁환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거문고와 노래 등 기녀가 되기로 한 15·16세에 시작해서 명기 소리를 듣기에는 짧은 세월이다. 관기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수업을 받은 걸로 봐서는 조금 비논리적인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참 모를 일이다. 아름다운 미모에 악기와 노래 시문에 능했던 한 여자의 내면의 풍경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나 하고 있는지… 황진이의 삶은 단편적이다. 그 단편들에 고리를 연결해 작가적 상상력과 사실과 허구를 적당히 버무려 놓은 수 많은 황진이를 작가들은 탄생시켜 놓았다. 정말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아니 진이에게 근접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고증에 충실하게 다가가 탐구한 작가를 믿을 수밖에. 그런 점에서 김탁환이나 전경린은 우선 신뢰감이 간다. 황진이가 살았던 조선 중기에 관련된 서책과 관련 연구 논문들, 인물에 대한 탐구와 고증을 통한 집요한 탐구로 책을 내 놓았기 때문이다. 김탁환의 황진이나 전경린의 황진이는(김탁환의 황진이는 문장 하나마다 시 한수가 겹쳐진다) 문체미학을 추구하였고 철저한 고증을 통한 책이 되었다.


유몽인의《어우야담》에 황진이에 대한 평이 흥미롭다.'여자들 중에서 뜻이 높고 협기가 있는 자이다' 허균의《성옹지소록》에는 '성품이 활달하여 남자와 같았으며 거문고를 잘타고 노래를 잘 불렀다'고 전한다. 황진이는 이렇듯 다소곳하고 의존적이며 조용조용한 여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작가 전경린도 황진이가 거문고와 시문에 능했고 진취적이고 도전적 삶을 살았던 걸로 봐서는 '중성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황진이가 살던 조선중기는 남존여비의 차별이 강화되던 시기이다. 문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고 평생을 별당 좁은 마당에 갇혀 지내던 시기가 아닌가, 그러한 시대에 황진이는 특별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결국 미색과 거문고와 노래와 시, 사대부들과의 막힘이 없던 소통이 그녀를 당당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얼마 전 <TV, 책을 말하다>에서 토론패널들이 던진 질문들이 흥미로웠다.
- 기생이 되고자 함은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에 근거한 허무주의적 체념이 아닌가?
(전경린은 아니다. 진이는 강렬한 실체성을 갖고 산 여자라고 해명했다)
- 황진이의 성격으로 봐서 이사종 집에 들어가 3년 동안 병든 어머니를 수발하고 정실부인을 섬긴 점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과연 황진이다운가?
(이에 전경린은 '시대에 부응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 부응한 것이다' 라고 답했다)
이번 기회에 황진이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보게 되어 기쁘다. 황진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고 늑대의 혼을 지닌 강하고 신비스럽고 고독한 그녀의 영혼에 한 발 더 다가선 듯하다. 어느 시대 건 파란을 일으키는 여자는 있었다. 하지만 황진이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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