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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사유의 악보 - 누구를 위한 악보인가?

by 나?꽃도둑 2020.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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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악보 - 이론의 교배와 창궐을 위한 불협화음의 비평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1
최정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사유의 악보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첫 번째 책. 오늘날의 사유와 사태를 규정한 (탈)근대의 이론과 작품 들을 교차하고 병치하고 혼합함으로써 근대와 근대 이후, 그리고 그 이후를 사유하는 비평에세이로, 작곡가이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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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야말로 저자의 변처럼  '이론의 교배와 창궐을 위한 불협화음의 비평'들이라 할만 하다. 그렇다면 이 사유의 악보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마도 준비된 독자들을 위한? 기꺼이 많은 사람들을 껴안고 나눠주고픈 사유의 악보는 아닌 듯 읽기에 숨가쁘고 난해하고 지루하다. 그리고 가끔 기쁘다.  

 "내 글의 문체는 사유다. 나의 작곡 어법이며, 작곡된 하나의 악보가 그 음악 어법과 분리될 수 없듯이, 이러한 어법이 나의 언어 혹은 사유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 15 

 

 라고 서문에서 밝혀 놓았는데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악보를 연주한다는 것은 혹은 할 수 있다는 것은 악보를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위험마저 안고 있다는 것은 아닐런지, 어떤식으로라도 연주가 가능하다고 해도 완전히 벗어나거나 빗나간 곡 해석은 참으로 작곡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게 분명해 보인다. 조금은 낯설고 난해하고 숨가쁘게 몰아치는 악장들을 거쳐나가면서 나는 이 책의 저자의 사유에 접근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조금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미미한 희망을 가져본 것은 '악보는 그 자체로서는 결코 음악이 아니며 단지 표기의 한 형식이자 약속이라는 사실이다.' 라는 변 때문이었다.  


따라서 해석은 연주자의 몫으로 돌리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녹록치가 않았다. 그렇다면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악보를 한쪽 구석으로 밀쳐내면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혹은 무용지물로 무시해 버리는 제스처를 보여야 한단 말인가. 저자의 사유의 폭은 참으로 넓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이해하면서 따라간다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아니 혹은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일테지만 아무튼 내게는 그랬다. 그리고 저자가 일독을 권한다는 도서목록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아니 황새 쫓다가 찢어질 가랑이를 염려해야 할 수준이다. 


비근한 예로 사유의 강, 한 마디로 노는 물이 다르다. 미리 수질검사를 끝낸 다음 우리에게 돌아와야 할 책이 아니었나 싶다. 고 3때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를 읽어내고 이제 겨우 35살의 남자가 헤엄치고 노는 사유의 강은 그야말로 이론과 텍스트안에서 그의 이력 만큼이나 종횡무진이다. 보편성을 비웃고 그 어떤 획일성, 권위와 권력. 국가주의 민족주의. 음악, 문학, 미학, 등 사유의 재료들을 가리지 않는다. 끝이 아니라 시작과 반복을 위한!   


그렇다면 사유는 무엇인가? 아니 무엇이어야 하는가? 사유의 강 그 언저리쯤에서 서성이며 흘깃거리며 깊이 들어가보고자 해본 적은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발을 담그어 본적은 없었다. 이론과 텍스트 안에서? 즉물적 사고와 현실 관계 안에서? 현상과 키워드로? 어디서부터 또 무엇을 위해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뭐 애써 굳이... 이런다면 "머리를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냐"는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르기에 이쯤에서 입을 다물기로 하자)  


어쨌든 저자의 사유와 홀레붙으려면 이해하거나, 혹은 매료되거나 해야 할텐데 글자와 깊이 밀착되지도 않거니와 행간은 온통 흰여백이거나 검은색 통로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막막한 곳도 있었으니, 하긴 이 모든 감상은 나의 무지와 얕음에서 오는 것이므로 넋두리밖에 되지 못함을 안다. 하지만 읽는 사람들마다 수축과 이완은 다를 것이다. 그래서 마냥 낙담할 필요는 없다. 읽다가 보면 내 문제와 만나는 지점도 있을 것이고, 사돈의 팔촌의 문제로 인해 두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장치에 관한 변주 2와 들뢰즈의 니체의 해석을 다룬 변주 3과 용산 참사를 계기로 작가선언을 한 몇 몇의 작가들과의 좌담을 다룬 10악장 등이 좋았다.  


서곡에서 소수를 위한 책이라고 밝히면서도 많은 이들이 이 책과 홀레붙기를 원한다고 한 저자의 바람은 사실 모순적이긴 해도 " 한 번 쓰인 작품은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다카하시의 말을 재인용하자면 이 책 역시 그러한 운명에 놓여질 게 분명해 보인다.  모쪼록 '왜 사유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어떤 회의와 결단의 물음이 중요하다는 걸 느끼며 생각하는 데 한발짝 내딛는 것에 자신의 운명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다만 많은 이들이 홀레붙기를 원했다면 조금 쉽게 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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