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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리영희 평전 - 아아, 님은 갔습니다

by 나?꽃도둑 2020.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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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리영희 평전

사상의 은사에서 의식화의 원흉까지, 한국현대사 참 지성의 봉우리로 우뚝한 언론인 리영희의 파란곡절로 점철된 생애와 사상을 조목조목 짚어낸 평전. 리영희와 오랜 교감을 나눈 후배 언론인 김삼웅이 집필한 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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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며 평전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조심스러운 일일 것이다. 객관적 자료와 사실을 바탕으로  쓴다고는 하나 지극히 주관적인 평으로 기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거니와 자신이 찬탄해 마지 않는 인물을 선택하는 데 있어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 힘들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평전 읽기가 내심 반갑지만은 않다. 연대기 순으로 혹은 중요한 사건 중심으로 씌여진 평전을 통해 인물의 면면을 알아간다는 것은 조금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다소 평면적인 인물과의 조우, 그의 업적과 인생관이나 세계관은 들여다 볼 수 있지만 한 시대를 살아내면서 아주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모습에서 보여지는 입체적인 인간은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취사선택에 의해 씌여진 평전은 자칫하면 같은 톤으로 읊조리는 고시조 같은 지루한 위험을 안고 있다고나 할까, 다행히도 평전을 읽기 전에 [대화]를 통해 우여곡절이 많았던 가족사, 사건에 얽힌 일화들을 리영희 선생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었던 탓에 평전의 내용이 그나마 입체적으로 전달되었다.

선생은 야만의 시대에 목숨을 담보로 그들이 커튼 뒤에 숨어 무슨 일을 도모하는지를 밝히는 일에 앞장 섰다. 위정자들과 언론인들이 입을 벌린 악어의 입속에 머리를 쳐박고 이빨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를 쪼고 있을 때 그 모양새를 드러내 보이고자 커튼을 열어졎히고는 자, 봐라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라고 끊임없이 외치지 않았던가, 정확하게 판단하고 진실을 알리고자 다각도로 자료를 수집하고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 했던 건 언론인의 양심이자 책무라고 여겼던 리영희 선생. 불의를 참지 못하는 천성적인 꽂꽂함과 정의로움은 항상 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기에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돌아보지 못했음을 뒤늦게야 후회하고 반성하는 모습에서 숲을 보던 시선을 거두어 드디어 나무 하나하나에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는 선생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졸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죽비를 힘껏 내리치며 몸소 어둠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던 큰 어른이신 리영희 선생, 그 붓끝에서 나온 글은 시대의 불의에 대해 일갈하는 사자의 표효와 같이 우렁차고 위엄이 있었다. 할 말은 기꺼이 하고야 마는, 그 밑바탕에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로움과 고집, 문제가 발견된 곳에서 출발하여 기꺼이 그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려는 탐구정신과 학구열로 그 모든 유혹과 고난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오늘날 큰 어른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싶다. 선생의 고매한 삶을 그 누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있겠는가, 문장은 흉내낼 수 있을지언정 야만의 세상에서 몸소 실천한 행위는 얼마나 높고 그윽한지 그저 우러러 볼 뿐이다. 어릴 적 강렬하거나 미미하게 겪은 체험들과 군에서의 인간 생명에 대해 저지르는 타락과 폭력을 지겨울 정도로 겪으며 전쟁에 대한 혐오에 빠지기도 하고 동생의 죽음, 진주 기생과 건봉사 스님의 의연함, 거창 양민 학살 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은 선생의 깊은 사색의 재료가 되어준다. 한 인간이 완성되어가는 길에는 무수한 많은 일들이 있지만 무엇에 대해 사유하는가는 우연한 일과 마주쳤을 때 마치 필연인 것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7년 군생활에서도 그랬고. 기자생활을 할 때도 그랬고 선생은 구린내를 숨기고 있는 현실과 타협을 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철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류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선생은 말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했던 착오판단이나 놓쳤던 부분, 가족에 대한 소회를 밝히셨다. 
 
 

  선생을 이름하여 빨갱이, 좌경 사상의 원흉이라는 평가와 함께 북한 현실은 바로 보지 못한 채 선전구호에 속아 자신이 속한 남한사회를 서릿발같이 비판한 것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선생에 대한 평은 극과 극이다. 사실 정치색이 뚜렷하지 않은 나같은 독자가 판단하기에도 선생이 일정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한 중국공산화 과정이나 북한에 대해 열린자세를 갖는 것에 대해서 별 거부 반응 없이 받아들여진다. 왜일까? 선생이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을 넘어서서 옳은 것은 옳다고 그른것은 그르다고 말하는 그 정직성과 새벽별 같은 선명하고 명료한 인식체계를 믿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일관되게 미국에 대한 비판이나 베트남전에 대한 식견 또한 합당하다고 생각 되어진다. 선생은 뜻은 옳았으나 잘못된 길로 가버린 사회주의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애정을 함께 드러내셨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수십가지의 일에 대해 아무도 그것이 거짓임을 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겉으로 드러난 표면만 보고 그 이면의 진실에 대해 귀 막고 눈을 감아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선생은 수고로움을  마다않고 알리는 일을 숙명으로 여기셨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고 한 선생의 글은 한쪽으로만 쏠리는 인식을 바로 세워주는 대들보와 같다. 얼마나 유연하고 합리적 사고인가, 특히나 흑백의 논리로만 세상을 판단하고 구축해가려는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이미 빨갱이라고 낙인 찍어놓고 무슨 평가를 하겠다는 것인가, 얼마 전 "리영희는 내 인생을 보상하라."고 한 어느 386 고백을 읽으면서 조금 혼란스럽고 착찹해진 건 왜였을까? 선생이 가리키는 달을 보지 못한채 손가락만 본 것은 아니었던가? 아님 방 안에서 뚫린 구멍으로 내다본 세상에 대해서 그게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아니었던가, 물론 선생에 대한 평은 냉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악어 속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자들은 그 고개를 빼는 일부터 먼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커튼 뒤에 숨어 일을 도모한 자들도 커튼을 열어 젖혀야 될 일이 아닌가,   

선생은 갔지만 그 분이 남긴 유산에 대해 곱씹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평전도 반가운 일이고 저작들도 연이어 나오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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