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울분 - 섬세하고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소설!

by 나?꽃도둑 2020. 4. 18.
반응형

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울분

1950년대 말 첫 소설집 <안녕 콜럼버스>를 발표하고 이 작품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오십 년 동안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해온 필립 로...

www.aladin.co.kr

 이 소설은 미국 뉴어크 출신의 유대인 청년인 마커스 메스너의 삶을 통해 우연성으로 얽힌 일들에 의해 인생이 어떻게 꼬이고 발목 잡히는가를 보여준다. 그 매듭의 개연성들은 아주 사소한 문제들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이 태풍의 눈이 되어서 그의 인생을 휘감아 어디론가 급히 휘몰아치게 만든다. 그래서 마커스의 운명은 마치 우로보로스 마냥 꼬리와 머리가 맞닿아 있는 듯 하다. 곳곳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부정적인 암시와 복선들이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을 제공해준다.  

 무엇보다 자유롭고 열정적인 삶을 원했던 마커스는 아버지의 지나친 간섭을 피해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되지만, 룸메이트와의 불화로 두 번이나 방을 옮기게 되자 학생과장으로부터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에 울분을 토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이었고 단지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에 대해 말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시작점부터 다르다. 결국 마커스는 자신의 입장을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분개하고는  아, 좆까 씨발! 욕과 구토로 마무리 짖게 된다. 참을성 없는 마커스를 바라보는 코드웰 학생과장과 "지독하게도 자기 시대를 모르고 살다니 정말 역겹다." 고 한 렌츠 학장의 울분은, 여학생 기숙사에 침입해 팬티사건을 일으킨 남학생들의 치기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인간의 행동은 규제할 수 있고 규제 되어야 한다던 학장의 말은 거의 백년동안이나 대학이 지켜낸 전통이자 권위였던 것이다. 기성세대가 이루어 놓은 전통과 사회적 조건 속에서 순응주의자로 살아내라고 주문하는 것은 역시 기성세대들이지만 젊은이들은 호락호락 안주할 수 없거니와 럭비공과 같이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도 없는 존재들이 아니던가,

 법률가가  꿈이었던 한 가족의 희망이었던 아들이자 미국의 선량한 시민이었던 마커스,  아버지의 지나친 간섭으부터 멀리 집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그동안 마커스는 해야 할 일과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을 아주 잘 해낸 착한 아들이자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손목을 그어 자살 시도를 했던 올리비아를 만나면서 마커스는 알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에 대해 위험을 감지한 어머니는 마커스를 제지하게 된다. 그의 삶을 통해 처음에는 희극적이었던 한 인간의 삶이 외부적 환경으로인해 서서히 분열되고 파괴되어 감을 보겐 된다. 결국 마커스와 같이 너무나 비극적으로 최후를 맞으며 이 땅에 뼈를 묻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돌이켜 보게 된다. 그들이 꾸던 꿈을 묻은 자들이 누구이던가, 그들의 뜨거운 피와 살을 묻은 자가 누구이던가, 너무 많은 걸 정당화 시키고 인간을 도구로 전락시킨 거대한 권력 앞에 한 개인의 꿈과 삶은 그저 한 점의 먼지가 되어 흩날림을 보게 된다. 

 무엇이 그들의 삶을 눌렀을까, 모진 운명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살지 않았던가. 자신에 대해 지나친 염려와 간섭으로 인해 빚어진 아버지와의 갈등,미국 중동부의 한 대학에서의 불합리적이고 응당 수긍할 수 없는 보수적인 관습과 올리비아가 주는 매혹과 일탈은 스무살이 채 되지 않은 마커스에겐 유혹이자 넘어서야 할 걸림돌이자 도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순간의 선택과 일탈이 인생을 완전히 전복시킴을 그 누가 알수 있었겠는가, 우리의 삶은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아래 입을 벌리고 있는 악어가 없는 세상에서 살며 1950년 대의 냉전시대를 살아낸 마커스의 삶이 어쩌면 비약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보였던 마커스, 그가 살아내고자 했던 삶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아닌 젊은이의 날선 지성과 순전한 맨몸으로 세상과 맞설 수밖에 없었지만 인생이 마음 먹은 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음은 한국전쟁터로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나타나곤 했었다. 아버지의 막연한 두려움과 마커스의 두려움은 어쩌면 같은 곳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한국전쟁에서 아들을 잃고는 절망의 중얼거림에서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커스, 내 눈에는 그게 오는 게 보였단 말이다. 이제 넌 영원히 가버렸구나."(p.236) 그러다 아버지는 서서히 태양을 잃은 풀처럼 시들어 무너져 내린다. "왜 그 애를 집에서 쫓아낸거예요? 순간의 노여움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좀 봐요!" 어머니는 죽은 남편의 사진을 들여다 보며 흐느끼며 이러기만 했다면 저러기만 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았을 부질없는 가정들에 붙잡히게 된다. 그 부질없는 가정들이 정말 현실이 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마 그들의 인생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아무 일 없이 마무리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가정이란 게 얼마나 무의미한 기대인지...... 인생은 지금, 아니 이미 일어난 일들로만 채워지는 것이기에 그 모든 가정들은 쓸쓸하고 또 쓸쓸하다

그렇다. 필립 로스가 그려내는 [울분]은 놀라우리만큼 섬세하고 격정적이고 비극적이다. 게다가 70대 노장이 쓴 소설이라고 도저히 믿지기 않는, 긴 말이 필요없는 뛰어난 소설이다. 케릭터에 몰입하게 하는 힘, 그 내적 감정을 따라가다보면 좌불안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좋은 소설을 마주한다는 것은 독자로선 크나 큰 행운임에 틀림없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