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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신은 위대하지 않다 - 종교의 위대성을 해부하다

by 나?꽃도둑 2020.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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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위대하지 않다 (양장)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월

 

신은 위대하지 않다 (양장)

최근 출간된 일련의 종교 비판서의 지은이들이 신경과학,분자생물학,동물행동학,집단유전학,발생학 등 자연과학에 바탕해 종교를 ‘외부로부터’ 비판해 들어가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이 책의 지은이 크리스토퍼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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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p.25

 수개월 전에 읽은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신화>(조철수 2000 우수학술도서)에서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었다. 이 책은 문명 발상지인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들과 유대의 유일신의 관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유대인의 구약이 수메르 신화에서 어떻게 차용되었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종교의 탄생의 요소는 아마도 신비와 환상, 그리고 특별한 체험이 만나 확산되고 집단 히스테리를 통해 결집되고 단단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는 최면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근래에 읽은 파울로 코엘료의 <포르토벨로의 마녀>에서 보면 종교가 이렇게 해서 탄생할 수 있구나 하는 내용이 있었다. 아테나에 대한 신비와 환상이 점점 확산되어 그녀를 우상시 하게되자 아테나는 살해당한 것으로 가장하고 종적을 감추어 버린다. 그녀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녀의 종적에 대해 사람들은 그녀가 사막으로 은신했다거나, 하늘로 승천했다거나, 히말라야에 사는 스승을 찾아 떠났다고 소문을 퍼뜨리며 계속해서 그녀의 귀환을 기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둘러싼 전설은 커져갈 것이고 그녀를 추종했던 사람들 중심으로 종파가 형성될 것이다. 그녀가 포르토벨로 방문을 중단하면서부터 이미 이런 조짐은 시작되었다. 아테나 라는 개인에 대한 숭배가 무서운 속도로 세를 늘려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형성된 종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나는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부정하고 그녀의 귀환과 구원을 기다리던가, 죽음을 받아들이되 어떤 의미를 부여하던가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특별한 체험을 통해서 위안과 신비를 가슴속에 품었을 테니까 말이다. 또한 평범한 사기극이 사람들 눈앞에서 진지한 종교로 변한 사례들을 한 두 가지쯤은 우리는 알고 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종교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종교가 대개 남성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통해서도 증명된다고 했다. (p.87) 종교는 처음부터 민족의 결집을 위해, 집단의 이익과 권위를 위해. 또는 개인을 위해,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종교는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p.29

 종교 전쟁이나 종교 분쟁으로 인해 도시가 파괴되고 서로 죽이고 하는 건 세계 곳곳에선 이미 일상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살생과 파괴가 일상사라니 표현을 하고 보니 너무 과격하다. 하지만 무수한 사례들을 보라. 무작정 신은 위대하지 않다고 외친 것이 아니다. 주장을 객관화하려면 근거가 필요한 법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세계 곳곳에서 종교의 이름아래 자행되고 있는 실상과 비리를 폭로한다. 종교박해를 가하는 것을 묵인하는 종교 지도층에 대해, 종교의 배타성, 편협성, 타종교에 대한 혐오와 증오심에 대해, 그리고 비인간적인 금기와 폭력의 정당화와 면죄부를 통한 자기기만과 합리화 등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인종차별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을 드러내 보여준다. 또 그는 유기적 관계로 얽혀 있는 전체주의와 종교의 유사성을 독재와 추종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p 336∼ ) '알기 위해서는 믿어라' 라는 명제 아래 종교가 가진 내세의 절대적인 통제는 전체주의의 독재와 닮아 있음을 갈파한 것이다. 다만 전체주의는 구체적이고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지만, 종교는 추상적이어서 인간의 상상력만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직자들의 헛소리에 의존한 결과만 초래했을 뿐이라고 한다.

종교의 형이상학적 주장은 거짓-p.99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통일교의 문선명 등 포괄적으로 다루긴 했지만 성서와 코란에 지면을 많이 할애함을 보여준다. 종교가 사실은 '신앙'에 의존하는 대신 조작된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신앙을 오히려 타락시키고 이성을 모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조작된 증거에는 지적설계론(창조론), 계시, 처벌, 기적에 관한 주장들이 포함된다고 한다.(p.111) 

앞서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종교에 반대하는 주장 중에서도 결코 물리칠 수 없는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 종교가 인간과 우주의 기원을 완전히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점
둘째 위의 잘못 때문에 최대한의 노예근성과 최대한의 유아독존을 결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
셋째 종교가 위험스러운 성적 억압의 결과이자 원인이라는 것
넷째 종교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희망사항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오늘 날 진화론은 일반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대전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진화의 속도와 매커니즘에 대해 논쟁은 아직 있지만 진화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창조론은 어떠한가? 사회진화론자 오귀스트 꽁트는 '종교는 불완전한 과거의 과학이다' 라고 말하였다.(그렇다면 진짜 과학이 도래한 이상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히친스는 한술 더 뜬다. 종교는 인류가 겁에 질려 울어대던 유아기에 생겨났으며 우리가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지식욕을(위안과 확신 등 유아적인 욕구들도) 충족시키기 위해 고안해낸 유치한 방법이다 라고 했다. 그는 또한 신체 일부를 제물로 바치는 할례에 대한 잘못된 관습이 낳은 잔혹성을 폭로한다. 종교적인 야만행위와 성적인 억압 사이의 연관성을 '살에 새기는 것' 만큼 분명히 보여주는 행위는 없을 것이다(p.327) 라고 비판한다.
네 번 째로 지적한 희망사항은 천년왕국의 도래일 것이다.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을 믿음으로써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을 믿지 않음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라는 파스칼의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될까? 하지만 그가 지적한 조작된 증거는 얼토당토하지 않는 것들이 아니다.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문헌비평, 고고학, 물리학, 분자 생물학을 이용해서 종교적 신화가 인간의 만들어진 가짜임을 증명했다. 처녀수태, 글자를 모르던 예수의 사도들은 우리에게 기록을 전혀 남겨주지 않았다는 점, 토리노 수의가 가짜로 밝혀진 점, 예수를 다르게 묘사한 유다 복음서, 도마 복음서, 금서가 되었던 무수한 복음서 등, 기적적이고 초월적인 문제들이 다르게 읽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코란에 대해 그 내용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화를 빌려온 것이며 이슬람은 필요할 때마다 예전의 경전과 전통을 제멋대로 베낀 표절 집합일 뿐이다. 라고 강경한 어조로 말한다. 그는 정말 겁이 없는 사람이다. 살해 위협도 불사하는 것 같다. 오죽하면 정의를 위해 기꺼이 이를 드러낼 수 있는 지식인이라는 평을 들었을까,

종교가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가?- p.255

 사람들은 더 이상 내세울 주장이 없을 때, 종교적 신념이 사람들을 더 낫게 만든다거나 사회를 교화시킨다는 주장을 끄집어내는 경향에 대해 말한다. 원죄로서의 종교가 갖는 가르침은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경전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 무오류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일관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의심할 줄 모르며, 비판할 줄 모르며 귀를 막고 입을 다물고 오로지 굳건한 믿음 아래 있다. 신학자들이 여러 관점에서 연구하고 탐구하여 무수한 오류들을 발견해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들이 부모들에게 아이가 버릇없이 굴면 돌로 쳐죽이라고 명령한 모세에 대해 알기나 한 것일까?(신명기에 나오는데 살인을 하라고?) 민수기에서 모세는 전투를 마친 장수들에게 민간인을 너무 많이 살려두었다고 화를 내기도 한다. 신약의 사악함은 구약을 뛰어넘는다는 말로 요약한다. 계시와 처벌 등 특히 요한 계시록은 등골이 오싹하게 만들고도 남음이 있다. 이게 종교의 힘인 것이다. 내세의 절대적인 통제 말이다.
그는 도처에서 자행된 종교의 패악을 까발린다. 노예제도, 인종 학살, 인종차별, 폭정, 마녀재판, 종교재판, 십자군 전쟁, 이슬람 제국의 정복전쟁, 구약성서의 잔혹성 등.

모든 것은 그냥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p.272

 지상에 생겨난 생물들이 수백만 종이나 되는 것처럼, 사막에서 생겨날 수도 있었던 수천 개의 종교 중 하나가 우연히 뿌리를 내리고 성장했을 뿐이다. 그것이 유대인들의 손에서 변형을 거친 뒤 기독교라는 형태를 띠게 되었고, 나중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치적인 이유로 이 종교를 받아들여 제국의 국교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혼란스럽고 모순투성이인 경전들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신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한편 이슬람은 여러 왕조의 손에 차례로 채택되어 대단히 성공적인 정복 이데올로기가 되었으며, 경전이 정리되고 종교의 기틀이 잡힌 뒤 제국의 율법으로 선포되었다. 역사 속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투들 중에서 한두번만 승자와 패자가 바뀌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종교, 그러니까 힌두교나 아스텍이나 유교의 사제가 되었을지 모른다(p.272 273)

종교는 선한 모범에 의해 널리 퍼진 것이 아니라 성전과 제국주의라는 구식 방법의 부속물로서 전파되었다(p.283)

일신교가 일어나기 전에 원시 사회의 제단에서는 피의 악취가 풍겼다. 대개는 인간의 피였다. 이것에 대해서는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읽어보면 주술, 종교, 과학의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인류가 죽음에 대한 공포와 희망적 관측이라는 버릇을 완전히 정복하지 않는 한 종교적 충동을 뿌리 뽑기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히친스의 말은 백 번 옳다는 생각이 든다. 긍정적인 면만 찾자면 또 무수히 많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 사랑을 행하게 하고, 선한 삶에 대한 욕구를 가지게끔 하는 것 등 말이다. 하지만 종교가 아무리 유순하게 굴어도 결국은 믿음에 대한 맹목성, 사람들의 사생활과 공적인 생활의 모든 측면을 더 높은 존재의 영원한 감시에 맡겨야 하고 이 끊임없는 감시와 복종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한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말은 거의 절망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세상에 피해를 덜 끼치는 대안적인 믿음과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고 희망을 얘기한다.

결론: 새로운 계몽이 필요하다
인류의 견본은 바로 인간 그 자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계몽주의 운동 말이다(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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