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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책] 바다의 세계사

by 나?꽃도둑 2021.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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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라딘 인터넷서점

 

 

 

몇해 전 친구들과 부관훼리를 타고 일본여행을 갔다. 부산항에서 밤에 출발해서 아침에 시모노세키항에 닿는 배였다. 우리는 선실에 짐을 내려놓고 갑판으로 나갔다. 멀리 부산항의 불빛이 아스라이 멀어지고 있었다. 몸을 가누기 힘들만큼 바람이 불어서 난간을 잡고 섰다. 배가 지나는 자리엔 검푸른 바다가 몸을 뒤집으며 끊임없이 허연 포말을 일으키고 있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서 있던 나는 참으로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주 먼 옛날부터 온갖 사연으로 바닷길을 따라 오갔을 사람들의 영광과 빛나던 업적, 국가 간의 교역과 교류, 침략, 눈물과 한숨을 집어삼키고 침묵에 빠진 거대한 바다 앞에서 설레임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역사는 왜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는가? 그동안 역사는 땅에서 쌓아올려지고 일어나고 남겨진 것들에 대해 기억하고 영광을 돌려왔다. 무수한 일들이 바다에서 일어났건만 우리는 바다에 관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미야자키 마사카쓰의 저작인『바다의 세계사』는 무엇보다 반가웠다.

이 책은 8장에 걸쳐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표의 70% 해당하는 바다와 인간이 어떤 관계를 가져왔는지, 바다가 인간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바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4대 문명과 유라시아 해역세계, 세계 최초의 해양 제국 로마, 남해원정에 나섰던 중국의 정화 함대, 북해를 개척했던 바이킹, 몽골 네트워크가 준비한 대항해시대를 거쳐 바다세계에서 발흥한 자본주의, 세계 바다를 재패한 영국, 기술혁신으로 인한 바다의 글로벌화를 가져온 현대까지를 다루고 있다. 항로개발, 배의 변천사, 바다를 소재로 한 소설과 음악 등의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목차 바로 뒤에 배치한‘바다세계 개념도’는 아주 유용했다. 내용에 해당되는 해역의 위치를 찾아가면서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바다의 세계사는 인식 바깥에 있던 바다를 구체적인 공간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비일상의 세계이지만 육지를 감싸 안고 하나로 연결되어 육지에 젖을 물리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바다는 창조적 공간이자 이야기의 보고다. 저 광대한 바다와 싸우며 십년 만에 집으로 돌아간 오디세우스, 사이렌과 인어의 전설, 인간으로 인한 고래와 해달의 수난, 신대륙을 찾아 나선 탐험가와 제국주의자들, 불굴의 정신으로 항로를 개척한 모험가들, 바다를 누비던 해적들 시간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역사의 바다는 그 이야기들을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 또한 바다를 접한 항구도시다. 배들이 쉬어가는 묘박지가 있고 여객선과 컨테이너 수송선이 끊임없이 오가는 곳이다. 부산은 오랜 세월동안 왜구의 침략과 노략질에 시달려야 했고, 일본 강점기와 한국 전쟁으로 인한 한국 근현대사의 슬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역사는 담론이다’라고 니체의 말처럼 현재의 사람들은 과거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야 한다.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현재의 삶을 반성하고 조망하는 건 역사가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현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어느 한 가지 틀로 인간 삶을 규정하기엔 세상은 너무 유동적이다. 인간 삶의 자취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봄으로써 국가중심, 육지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의 장을 마련하는 데 이 책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지배 서사를 가진 서구와 비서구의 사이의 권력의 불균형의 관점과 폭력의 역사를 바라보는 독자로서의 불편함은 어쩔 수 없었다.

 

바다 그 너머를 꿈꾸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다른 문화와의 충돌과 섞임, 포섭이 세계를 서로 연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육지의 패쇄적 공간으로부터의 탈피와 다른 존재와의 마주침은 인류사에 중대한 모험이었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로 이어진 폭력의 역사이지만 인류는 발전과 진보를 거듭할 수 있었다. 그 젖줄을 댄 건 바다였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모험에 직면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다를 다시금 재고할 때가 된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감상의 바다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바다, 자원으로서의 바다, 생명체가 넘치는 바다, 역사의 바다, 은유의 바다 등 수 많은 바다가 지금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바다의 안과 밖은 분명 다른 모습이다. 체험하는 바다와 바라보는 바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도 바다는 달라진다. 자원개발과 탐험으로 대상화된 물질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바다는 꿈과 창조적 공간으로써 삶의 역사를 다시 쓰기가 가능한 곳이다. 단선적이고 균일하지 않은 비폭력적인 우리 모두의 역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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