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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책] 환상의 빛 ㅣ미야모토 테루

by 나?꽃도둑 2021.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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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라딘 인터넷서점

 

20세기 후반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은 '환상의 빛, 밤 벚꽃, 박쥐, 침대차' 총 네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환상의 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으로 1995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환상의 빛'은 유미코가 7년 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남편에게 띄우는 편지형식을 취하고 있다.
태어난 지 석달 된 아들 유이치와 자신을 남겨두고 자살한 남편을 잊기 위해  유이치가 막 네살이 될 무렵 자신이 살던 아마사키에서 재혼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해변마을 소소기로 오게 된다. 유미코는 남편과의 추억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달아났다고 여겼지만 불쑥불쑥 찾아드는 건 남편이 왜 자살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지난 7년을 돌아보며 죽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일과 어릴 적 경험했던 할머니에 관한 이상한 죽음 등의 과거와, 재혼한 남편과의 생활을 담담하게 들려주듯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몇 가지 장치들이 눈에 띈다. 흩어져 있는 이야기의 장치들은 퍼즐조각과도 같다. 특히 죽은 남편의 사팔눈과 어릴 적 경험했던 할머니의 죽음에 관한 기억은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사시는 어떤 물체를 주시할 때 한쪽 눈의 시선은 그 물체를 향해있지만, 다른 눈은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속내를 읽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유미코는 남편이 죽기 열흘 전에 사팔 눈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이상한 일을 떠올린다. 마치 딴 사람처럼 낯설게 느낀 그날과 어릴 적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스쿠모에서 죽고 싶다고 국도로 걸어가던 마지막 뒷모습은 묘하게 닮아 있다. 죽음으로 한 발 다가서는 사람들의 알 수 없는 몸짓은 불가해한 암호와도 같다. 그날 달리는 전차를 피하지도 않고 철로 위에서 생을 마감한 남편은 무엇때문에 자살을 한 것일까?...

문제의 근본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삶의 언저리에서 일어난 일들을 해독하려는 유미코의 처절한 몸부림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고 넘어서지 않고서는 지금의 삶으로 연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의심과 불안 속에서 존재와 삶에 대한 물음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보건소에 민박집 서류를 내기 위해 갔던 와지마에서 소소기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마주친 사팔눈을 한 서른전후의 남자를 보고 유미코는 무작정 남자의 뒤를 쫓아간다. 마치 남편의 환영을 보듯, 초점이 다른 곳을 향한 그 남자가 남편처럼 죽을지 모른다고 여긴 유미코는 그의 뒤를 한동안 쫓다가 그만 두게 된다. 남자의 모습에서 절대 돌아보지 않는 남편을 발견한다. 그제서야 그의 죽음을 실감하고 파도가 무섭게 몰아치는 바다를 보며 통곡한다.

 

 

 

 

자살한 남편의 뒷모습에 끊임없이 말을 걸었던 유미코,

태어난지 세 달 밖에 안 된 아들과 자신을 두고 남편이 자살한 이유를 아무리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그날 찾은 해답은 남편이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라고... 몰아치는 바다에서 순간 아름답게 보이는 잔물결의 빛처럼, 남편도 철로 그 너머에서 그런 빛을 보았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한다.

거친 암흑의 바다가 가끔 보여주는 신기루와 같은 빛에 이끌리듯 남편도 그런 환상의 빛에 이끌려 죽었을지 모른다는 결론을 얻기까지 그녀는 7년이란 세월 동안 붙들려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상한 방식의 죽음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유미코는 비로소 과거로부터 조금 놓여나게 된다.

 

무엇으로 죽든 이해할 수 없는 죽음과 이상한 방식의 죽음은 남겨진 자가 풀어야 할 숙제처럼 보인다. 남겨진 자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삶과 존재의 물음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게 되는 죽음에의 통각과 통찰은 유미코의 삶을 통해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좋은 소설이다.

 

 

 

 

 

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31323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환상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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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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