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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앞에서 서성거리다

[영화] 벌새

by 나?꽃도둑 2020.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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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만 들었던, 국내외 유수영화제 25관왕에 빛나는 <벌새>를 드디어 보게 되었다.

김일성 사망과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있었던 1994년을 건너는 열네 살 은희의 삶을 스크린에 섬세하게 담아냈다.

 

떡집을 하느라 늘 지쳐있는 엄마, 가끔 몰래 양복을 빼입고 춤추러 나가는 아빠, 뻑하면 은희를 때리는 오빠, 연애하느라 밖으로 나도는 언니 때문에 집안 분위기는 싸우고 찌지고 볶는 그야말로 콩가루다.
심부름을 갔다가 엉뚱한 집에 초인종을 누르고 문열어달라고 신경질 부리는 첫 도입에서 알 수 있듯이 집은 은희에게 포근하거나 열린 공간이 아니다.
언제나 불안을 품고 있는 그늘진 곳이다.


대신 단짝친구나 남자친구와 있는 공간은 환하다. 열네 살 은희로 돌아가 마음껏 웃고 떠든다. 하지만 매일 즐겁거나 순탄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1초에 90번의 날개짓을 하는 ‘벌새’처럼 은희는 사랑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다 학원에서 김영지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데 은희의 마음을 알아주는 어른이자 세계를 한거풀 걷어내고 성장하게 도와준다.
때리면 절대 맞고만 있지 말라는 말과 성수대교 붕괴로 죽기 전 남긴 편지 내용은 은희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어준다.

은희의 아빠나 오빠 담임선생님같은 폭력적이거나 엄마처럼 사는데 지쳐서 무관심해도 은희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한걸음 다른 세계로 이끌어주는 영지같은 어른이 있는한 아이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또한 표현이 서툴고 투박하지만 아픈 은희 앞에서 우는 아빠가 있는 한, 누나가 한발 차이로 성수대교 붕괴에서 살아남은 안도감에 우는 은희 오빠가 있는한 그리 절망할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다.

 

<벌새>는 은희의 성장기면서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도 하다. 사춘기 소녀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그게 내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상처없이 성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핍과 상처를 딛고 일어선다면 더 단단하고 성숙한 어른이 되지 않을까...
은희가 끊어진 성수대교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단절과 붕괴가 있지만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있는 장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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