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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쾌락의 발견 예술의 발견 - 사유의 밥상

by 나?꽃도둑 2020.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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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발견 예술의 발견
전영태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월

 

쾌락의 발견 예술의 발견

문학평론가 전영태 교수가 쓴 만평 형식의 문화에세이. 성(性)과 문학, 음악과 철학 등 전방위 기호를 전유하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씌어졌다. 뛰어난 관찰과 부지런한 사유, 꼿꼿한 자의식을 갖춘 문학평론가로 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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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살던 친척 중에 이상한 오빠가 있었다. 초등학생인 내 눈에 신기하게만 보이는 영어 문장을, 남의 집 담벼락에다 빽빽하게 쓰거나 한자를 휘갈겨 쓰곤 했다. 머리가 너무 좋아서 돌아 버렸다는 얘기를 주워 들은 나는, 중학생이 되도록 머리가 좋아지는 책과 공부를 멀리하려 애썼고, 노는 일에 열중하여 엄마에게 자주 혼이 나곤 했다. 순진한 나는 그 말을 진짜로 믿었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엔 머리 좋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과 그 말이 가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쾌락의 발견 예술의 발견》을 읽으면서 저자인 전영태의 뇌의 저장 용량이 보통 사람들보다는 크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 낚시, 성과 문학, 철학, 그림 등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그것을 직조해내는 이야기 솜씨가 보통이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그 일련의 지식들을 그저 나열하고 설명만 했다면 그 또한 베끼기의 한 습성을 드러낸 그렇고 그런 글쟁이였을 텐데, 저자는 되새김질을 거쳐 소화시킨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사유의 밥상을 받은 듯하다.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자기 정체성이나 고유성을 획득하기 어려운 법이거늘. 먹은 것과 배설하는 것에 별 차이가 없다면 그것은 복제요, 아류요, 앵무새일 따름일 것이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는 일단 혐의를 벗은 듯 하다. 우선 이 책의 미덕은 저자의 학문적인 신중함과 더불어 재치와 유머에 있다. 일단 어깨에 힘을 빼고, 재담꾼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독자는 제목만 보고는 지레 겁을 먹고 책을 펼쳐보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둘째 아들과 가거도에 참돔 낚시를 갔을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입질만 계속해대는 걸보고 아들에게 "그러지 말고 풍뎅이 대신 크릴을 써". 라고 말하자 "물고기들이 풍뎅이 미끼에 강한 호기심을 보이고 있어요.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미끼라서 탐색만 하고 시식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라고 대꾸한다. 분명 제목과 딱딱한 표지의 제본 상태만 보고 살까 말까 읽을까 말까 눈 도장만 찍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저자는 분명히 한 마디 던질 것이다. "그러지 말고 이 참에 잡고 읽어봐요. 별거 아니니까" 라고. 사실 나는 표지에 있는 "사유의 미식가가 발견한 문화의 즐거움" 이라는 문구에 끌려 책을 사게 되었지만 이유야 수만 가지면 어떠리!


  이 책은 1부 고독의 발견과 예술의 발견으로, 2부는 쾌락의 발견과 행복의 발견으로 나뉘어져 있다. 저자 자신의 경험이나 감흥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을 매개로 하여 '발견'이라는 놀라운 성취를 옛 문헌에서, 예술작품에서. 음악에서, 낚시에서, 멜로드라마 등에서 찾아내 에세이 형식으로 펼쳐 놓았다. 종류는 많으나 산만하지도 난삽하지도 않다. 사유의 미식가답게 품격과 절제의 미를 갖추었다. 저자는 첫 장에서 자고로 인간은 혼자 탐색하는 시간을 가질 때, 위대해지는 법이며 그것이 예술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길임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일이라고 뉘앙스를 풍긴다.
'보이지 않는 새 떼의 지저귐 소리는 느낄 수 없지만, 나뭇잎 하나가 흔들리는 것은 절규처럼 보고 듣는 청각 상실자의 내면의 눈, 귀 같은 것일 것이다 라고 탐색의 시간에 대해 말한다. 결국 그 시간을 지나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간이 바로 예술적 행위에 해당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마다 다르며 누구는 음악에, 미술에, 문학에, 무언가를 수집하는 것에 삶의 가치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또한 내 나름의 '발견'이 있었다. 온갖 종류의 유희에 빠져들었던 그때를 떠올려 보면, 탐색의 시간을 지나 나름대로 창의적인 예술적 행위와, 재미난 건 오랫동안 푹 빠져 있었던 쾌락의 시간과 행복의 시간을 두루 거쳤던 것이다.

 2부에 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에 대해 나온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가려움으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그 가려움에 대해 맞아, 맞아, 하고 맞장구 치다가보면 가학적 가려움의 쾌락 증후군을 앓고 있는 문제아들을 만나게 된다. 가려움은 긁으면 긁을수록 더 가려운 법이거늘, 어찌하여 피가 나고 진물이 나도록 긁었느뇨? 하는 생각이 든다. 적당한 쾌락은 기분이 좋고 즐거운 상태인데 욕망이라는 것이 끝이 없는 건지, 제어장치가 고장난 건지, 그 가려움에 대해 어떤 이들은 현명하고 상식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인간에게서 욕망을 죄다 빼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저자는 창세기에 주목한다. 인류의 기원을 밝히면서 욕망의 근원까지 해명하는 욕망의 심리학, 철학, 생물학, 그리고 신학의 종합 교과서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을 두고 축복이라고 불러야 하나 불행이라고 불러야 하나, 인간의 욕망은 쾌락을, 예술을, 행복을 낳는 삶의 원천이 되었다. 욕망을 가려움이라고 정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픈 것은 참아야 하지만 가려운 곳은 긁어줘야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단지 반복과 과잉만 경계하면 될 것이다. 미와 쾌락은 서로 잘 어울려야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 된다고 했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예술가이면서도 또한 아무나 특별해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나는 무엇보다 낚시꾼의 은유와 상징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과 멜로드라마로 우리시대 다시 읽기 부분이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지적, 관심도의 가려움이 그 곳에 있지 않았나 싶다. 저자가 어느 정도 시원하게 긁어준 셈인데 낯선 남자에게 긁힌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는 걸로 봐서는 이 또한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인가?
 결국 이 책에서의 가장 큰 발견은 인간의 발자취인 셈이다. 그들이 왜 이 길로 지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탐색한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들을 불러 세우고 항변과 당위성에 대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작품 속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 이 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2006년도 2분기 우수도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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