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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멋진 신세계 - 이카루스 바다로 추락하다

by 나?꽃도둑 2020.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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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0월

 

멋진 신세계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1932년 작으로 과학문명의 과도한 발전 결과 인간성의 상실을 결과하고 만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렸다. 미래의 인간은 출생시부터 인공수정에 의해 대량생산되어 지배자 계급과와 피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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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를 지배했던 주류사상은 진보주의였다. 자율주의 사회주의 마르크스의 유물사관, 진화론 등 산업혁명 이후 급속도로 발전을 가져온 과학 기술은 인간을 구원해줄 대안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세계대전으로 과학기술은 전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인간성의 황폐화 전체주의로 몰아감을 헉슬리는 본다. 그는 혼란과 무질서 위에 기조한 낙관적 진보주의자들을 배격함을 《멋진 신세계》에서 보여준다. 포드 T형 자동차가 대량 생산되던 해를 기원으로 한 포드 632년, 이 소설은 시작된다. 세계는 '공동사회' '주체성' '안정' 이라는 세계공통의 표어를 내걸고 10명의 총통이 이끄는 세계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단일화 획일화 아래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운영된다.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의 탄생은 어머니의 자궁이 아닌 저장 보관되어 있는 난자 정자로 인공부화를 거쳐 대량생산된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다섯 단계의 계급은 태어나기 전에 미리 정해져 거기에 맞는 환경과 조건을 부여받는다. 가장 하층민인 엡실론인 노동자 계급은 보카노프스키라는 대량생산을 원칙으로 하고, 불변의 델타는 꽃(전기충격)과 책(소음)으로 본능적 혐오감을 형성케 하는 조건 반사적 인간으로 만들고, 표준형인 감마는 산소 불충분으로, 베타 알파 계급은 수면학습법과 세뇌교육으로 강화시킨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누구나 행복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불쾌한 것을 억지로 참을 필요가 없고 배신도 없고 이겨내야 할 유혹도 없다. 사람들은 가족, 고통, 죽음, 질병에서 해방되어 조건반사 교육으로 마땅히 해야만 하는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그들은 모두 기계적이고 단조로운 생활에 길들어져 있다. 하지만 모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위치에서 다른 계급을 부러운 시선으로 넘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보장된 생활과 자유로운 성과 '소마'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혐오하는 것은 가족이나 신을 믿는 등 미신 등일 뿐이다. 또한 만인을 위한 세계 국민이기에 개인을 위한 어떤 일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한다.

여기서 지배계층인 알파인 버나드는 그나마 세뇌로 인한 의식화와 심리조작이 덜된 인간으로써 소마를 되도록 먹지 않으려 애쓴다.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아웃사이더인 셈이다.
 "나는 이대로의 나 자신이 좋소, 비록 비참할지언정 이대로의 내가 좋단 말이오, 소마를 먹고서 아무리 즐거울지라도 나는 내 자신이 되고 싶소." 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버나드는 이상적인 국민인 간호사 레니나와 함께 견학차 야만인이 거주하는 지역인 맬파이스로 가게된다. 거기서 존을 만나게 된다. 배타 계급이었던 존 새비지의 어머니인 린다는 소장 토마킨과 함께 이 지역으로 왔다가 린다가 계곡에서 추락하자 그대로 혼자 돌아가 버리는데 임신한 린다는 인디언의 도움으로 출산하게 된다. 버나드는 존을 데리고 문명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문명의 세계에서 살 것을 설득하는 총통에게 존은 말한다.
 "저는 편안하고 안락한 것이 싫어요. 저는 신과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과 죄를 원합니다."

《멋진 신세계》는 역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제목이다. 제목만으로도 한껏 과학의 맹목성을 조롱한 느낌이다. 과학이 우리를 구원해 주리라는 망상에서 깨어나게 하는 소설이라 하면 지나칠까?  존이 결국 야만인 세계로 돌아가지도, 또한 문명 세계에 남아 살아가지도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게 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헉슬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어떤 형태의 사회였을까. 질서와 무질서가 혼재되어 있지만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 하지만 질병과 고통과 죽음에서 해방된 사회였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의 삶의 토대인 종교, 예술, 자유가 박탈당한 사회에서는 어떤 것도 무의미한 일임을 헉슬리는 보여준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보여준다. 누가 감히 우리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자유에의 의지를 지닌 인간을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하지 않으면 고통에의 무감각, 사회제도의 철저한 순응자로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갈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일 뿐이다. 가장 이상적인 완벽한 사회일 뿐이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질서와 혼란 고통과 경쟁 없이 살아간다. 그들 모두는 자신의 위치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현실도피를 돕는 당의정인 소마로 살아간다.  획일성 단일성으로 이루어진 전체주의 사회이긴 해도 다들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이 곳은 한마디로 인간성 말살 위에 세워진 유토피아다.

망상, 욕망, 사명감으로 인해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며 인간은 지금도 진보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쯤에서 멈추어 설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지금도 논쟁중이고 분쟁 중이다. 또한 우리의 정신은 세뇌되어 프로퍼갠더의 농락에 넘어간지 오래다. 세계 각 국의 사람들은 같은 회사의 제품을 집어들고 있고 전쟁산업에 몰두하고 있다. 문화의 획일성, 언어의 획일성 과학의 획일성, 제품의 획일성, 생각의 획일성 등등, 우리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리모콘 콘트롤되고 있는 것이다. 헉슬리의 상상이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경고쯤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결코 인간은 호기심과 행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과학이든 기술이든 예술이든 종교든 무엇이 우리를 구원할 것인지는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그 시기가 도래해봐야 알 것이겠지만 이카루스 꼴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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