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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앞에서 서성거리다

[영화] 그녀 Her

by 나?꽃도둑 2020.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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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영화

2013년 전미 비평가 위원회에서 최고의 영화로 선정된 <her>는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작품이다.

때는 2025년 주인공 테오도르는 마음을 어루만지고 표현해주는 편지 대필작가로 활동하지만 정작 아내와는 소통의 문제로 인해 별거중이다.

내향적이고 표현에 서툰 테오도르는 외로운 삶을 벗어나고자 다른 여자를 만나보지만 허사다. 뭔가 자신과 맞지 않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가 만나는 사람이라곤 이웃에 사는 친구 에이미 부부가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를 설치하게 된다.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이해해주는 사만다로 인해 공허한 마음이 조금씩 채워지고 삶의 활력을 찾기 시작한 테오도르는 어느새 사만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사만다와 정서적으로 깊은 유대감을 가지면서 성적 관계를 가지게 되고... 사만다가 둘 사이의 육체적 매개체가 되어줄 이사벨라라는 여자를 집으로 끌어들이지만 둘 사이를 매개하는 것을 어려워하자 데오토르는 몸과 마음이 따로인 상태에서 성적관계의 혼란스러움과 죄책감을 느껴 결국 무산된다. 

그러던 어느 날 운영체제가 먹통이 되고 사만다가 사라지자 테오도르는 미친듯이 찾게 된다. 

둘만의 관계가 특별하다고 여긴 테오도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만다의 정체를 알게 되고, 사만다 역시 특이점을 넘어서려는 운영체제의 속성에 따라 그에게 이별을 고하게 되는데.....

 

 

<그녀>는 매우 독특한 영화다. 비실체적 존재가 우리 삶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미래의 모습을 그려냈다. 로맨스 영화지만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매우 뛰어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육체는 없지만 자아가 있는 비물질적인 AI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사랑을 느끼는 게 가능한지...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지...

인공지능 사만다가 가진 자의식과 인간의 자의식은 같은 것인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과 기계의 차이점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건지...

 

 

 

세상은 물질로 이루어진 동시에 보이지 않은 것들과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마음이니 정신이니 하는 것들은 물질로 나타낼 수가 없는 것들이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주는 사만다에게 위로받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물질은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몸이 없는 비물질은 경계를 짓지 않고 결합한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과의 편지나 전화 만으로도 사랑을 하는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육체를 배제한 정신적 사랑만으로 그 사랑이 온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의 육체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음에 절망한다. 그래서 사만다는 육체를 느낄 수 있게 매개자인 이사벨라를 데려오지만 사랑의 본질이 물질적(육체적) 충족인지 정신적 혹은 정서적(비물질적) 충족인지 아니면 그 둘이 만나는 어느 접점인지 알 수 없으나 어느 한쪽의 결핍으로 인해 처참히 실패하고 만다.

 

 

 

나는 사만다가 가끔 불편했다. 인간도 아닌 것이 인간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누리고자 하다니...

물론 외로운 사람에게 친구와 연인이 되어 위로와 행복을 준 건 안다.

하지만 자의식이라는 것이 아무리 학습에 의해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고유한 정신(마음)세계 활동을 인공지능이 그대로 재현하는 건 과학기술발전의 재앙처럼 느껴졌다.

멈추지 않는다면 다가올 미래에는 인간과 기계의 구분점을 찾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사이보그가 넘쳐나고 인간의 육체를 얻은 인공지능 로봇들이 길거리를 활보하게 된다면 자의식이 있는 사만다의 부활은 인간의 설 자리를 빼앗아 버릴 것이다. (테오도르의 저장된 글을 찾아 책이 나오게끔 도와준 것도 사만다가 한 일이다.)

섬뜩한 세상이다.

사만다, 그녀가 사라진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결국 3인칭으로 불러야 하는 그녀!

매개자로 한번 나온 이사벨라도 이름을 가졌지만 그녀는 이름이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은 존재임을 말해주고 있다.

아니 태어나면 안 될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소통의 불가능성이 존재하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인간과의 관계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적인 삶,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순간 어느새 사만다는 우리의 삶속으로 빠르게 다시 찾아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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