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앞에서 서성거리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

by 나?꽃도둑 2020. 12. 13.

 

 

 

영화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났다. 글루미 선데이다.

오늘부터 14일간 자가격리 대상자가 된 날이다. 남편이 확진자가 다녀간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은 탓에

가족 모두가 자가격리 대상이 된 것이다. 게다가 남편은 양성반응이 나와서 내일 입원이 예정돼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남편과의 접촉이 1~2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어서 따로 검사 없이

자가격리만 하게 되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일을 막상 겪고 보니 순간의 방심에 예외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0.1% 확률 안에 들어간 셈이다. 

걸려라 하는 로또는 안 걸리고 코로나 격리대상자로 걸리다니....

이런 기막힌 일이 따로 없다..

14일 동안 갇히게 된 아들과 나는 사실 걱정거리도 아니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과 영화를 보면 되는 일이다. 

그나저나 남편이 너무 걱정된다. 

치료 후 휴유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보니 더럭 겁이 난다. 남편은 아직 콧물 말고는 별다를 증세는 없어서 

안심이 되면서도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잘못 될까봐 스물스물 올라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럴 때 동종요법이 필요하다.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릴 필요도 있지만 슬픔에는 슬픔으로 우울에는 우울로 다스려야 할 

때가 있는 데 바로 오늘이다.

글루미 선데이에 글루미 선데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이 영화를 본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최근에 또 보게 되었다. 강렬하고 아름다운 영화다.

 

 

 

 

 

'글루미 선데이'는 헝가리 작곡가인 레조 세레스가 1933년에 발표한 곡으로  '자살자의 찬가' '자살자의 송가' 로

불리운 유명한 곡으로 전 세계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들었다고 알려진 전설적인 곡이다.

헝가리에서는 실제로 노래가 출시 된 지 8주 만에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자살했으며 유럽 여러 나라에서

 수십 년간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글루미 선데이>는 이 노래와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쓴 닉 바르코프의 소설<우울한 일요일의 노래>를 롤프 슈벨 감독이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세계2차 대전 전후를 배경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카페의 주인 자보와 그의 연인 일로나 그리고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독일군 장교 한스와의 엇갈린 사랑과 복수를 다루고 있는 걸작이다.

 

 

사람에 따라 영화의 설정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다.

비독점적 다자간 사랑 즉 폴리아모리를 다루고 있어서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카페주인 자보와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일로나이다.

온화하고 품위있는 자보와 첫눈에 반할 만큼 수려한 외모를 가진 안드라스와 사랑스런 일로나 또 일로나를 사랑하는 독일인 한스. 이들의 사랑은 시대의 우울한 공기 만큼이나 비극적이다.

영화는 1999년 자보 카페를 찾은 노신사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카페를 찾은 노신사는 사진 한장을 보고 크게 놀라 쓰러지는데 바로 자신이 찍어준 일로나의 사진때문이었다.

 

영화는 60년 전으로 돌아간다. 자보 가게에서 함께 일을 하는 일로나는 피니스트로 일하기 위해 면접에 늦게 도착한 안드라스와 서로 첫눈에 반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일로나는 자보와 안드라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둘 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자보는 일로나를 다 잃느니 일로나의 일부분이라도 갖겠다고 한다. 얼마나 사랑하면 그런 선택을 하는 건지..... 자보는 일로나를 사랑하는 안드라스를 곱게 바라본다. 셋은 행복해 한다. 남녀의 사랑에 있어 질투가 빠진 사랑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셋의 사랑이 가짜라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자보와 일로나와 안드라스는 진짜 사랑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일로나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해 강에 투신한 독일인 한스는 독인군 장교가 되어 자보 카페에 나타난다. 한스의 오만한 요구를 안드라스가 들어주지 않자 일로나가 나서서 글루미 선데이에 가사를 붙여 노래를 하게 된다. 일로나에게 생일선물로 준 글루미 선데이는 일로나로 완벽해진 걸 직감한 안드라스는 한스의 권총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그의 죽음을 두고 존엄에의 선택이라는 말을 하는 자보. 모든 재산을 일로나 명의로 하고선 극약으로 자살을 하려는 순간 나치에 의해 잡혀간다. 일로나는 자보를 구하기 위해 한스를 찾아가게 되고 그의 요구대로 관계를 가지지만 자보에게 은혜를 갚겠다던 한스는 질투에 눈이 멀어 자보가 죽음의 수용소로 가게 내버려 둔다.

 

 

 

카페주인 자보와 일로나

 

 

 

안드라스와 일로나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일로나와 장성한 아들이 축배를 드는 장면과 노인이 자보 카페를 찾아 죽음에 이르는 첫 장면이 연결된다. 자보가 남긴 독약으로 비로소 복수를 하게 된 일로나와 그의 아들..

과연 누구의 아들일까?... 만약 한스(노신사) 아들이라면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그렇게 열린 결말로 관객의 상상과 추론에 맡겨 두고 영화는 끝이 난다.

 

 

 

 

 

사랑은 독점이어야 할까? 사랑은 공유할 수 있는 것일까?

진짜 사랑이라면 어떤 모습이어도 좋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든다. 위험하다고?...

코로나19가 더 위험해 보인다...

머리가 복잡하고 기분은 막막하고 우울한 날, 글루미 선데이나 들으며 보내야겠다.

 

 

1933년에 발표한 레조 세레스 곡

출처 youtu.be/66PKgUqK_RQ

댓글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