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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건져올린 에세이

겨울나무에 관한 생각

by 나?꽃도둑 2020.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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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뼈대를 드러냈다.
봄에 움을 틔워 참새혓바닥 같은 연둣잎을 길러내고는
여름 한철 눈부실 정도로 짙푸른 생을 보냈다.
가을이 되어서야 한 잎 두 잎 떨구며
제발등을 덮기 시작하였다.
더러는 바람에게 내어주고
더러는 흙에게 내어주고
더러는 새와 곤충들에게 내어주더니
겨울이 오기전 서둘러 모든 잎을 다 떨구어냈다.

 

박수근 화백의 '나무'

비로소 맨몸으로 선 겨울나무가 되었다.

 

 

잎을 다 떨군 겨울 나무를 우리는
나목이라 부르기도 하고
헐벗은 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낸 겨울나무는
자신을 내버려둔다. 그 자리에
하늘이 들어앉고
해와 달이 걸터앉아 쉬어가고
빈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새들이 잠시 쉬어가도

 

 

겨울나무는 동안거에 든 스님처럼
침묵으로 오로지 내면에만 집중한다
밖으로 난 통로를 닫고 안으로 침잠하여 모든걸
절제하며 자신의 힘을 안으로 응집시킨다.

 

 

나도 한 그루 겨울나무로 서 본다
요란한 삶을 잠시 멈추고 내안을 들여다보며
잠시 침묵에 든다.
본질만 남기고 현상을 다 걷어낸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본다
곧게 뻗은 모습인지
옹이지고 구불텅 구불텅 어지러운 모습인지
적당히 휘어지며 뻗어나간 모습인지...


 

 

 

 

굴곡은 삶의 내력을 말해준다.

곧게 뻗어나가다가도 어떤 이유로 인하여 돌연 방향을 틀어 휘어진 자리엔 삶의 변곡점이 있다.

겨울나무는 그것을 오롯이 다 드러내보인다.

의연하고 초연한 모습이다.

칼바람에도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제 뼈끼리 부딪히며 내는 삐걱 삐이걱 소리에도 의연하다.

겨울나무에게서 배운다.

화려한 수식을 덜어내고 우직하게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하여

겨울나무에게서 배운다.

내면의 힘을 모으기 위해 우뚝 서서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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