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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건져올린 에세이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

by 나?꽃도둑 2020.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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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맥주를 마셨다. 남편이 한잔하면서 야구 보는 걸 좋아해서 일주일 중 삼사일을 마시며 산다.

맛있는 안주를 준비해놓고 부르는데 그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고질병이다.

그렇다고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500ml 한 캔 아니면 두 캔에 알달딸해지니 하수 중에 하수다.

나는 술 마시고 난 뒤 주로 두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말 많음과 쏟아지는 잠이다.

맨정신일 때보다 기분이 업된 상태라 목소리 톤도 높아지고 말을 많이 한다. 그러다보면 서서히 술에서 풀려나곤 한다.

잠이 쏟아지는 날은 피곤한 날이다. 그러면 일단 자야한다. 

 

정말 단순한 삶이다. 그런데 자기 전 치르는 의식이 있다.

블로그를 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취중에 쓰거나 중간에 일어나 글쓰기를 하려고 알람을 맞춰놓는다.

일단 자자! 그리고 깨어나 쓰리라!

매일 글을 쓰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그동안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게 100일을 넘어서고보니 어느정도 탄력이 붙었다.

100일 이전의 나의 삶은 머리 따로 몸 따로 움직이는 반복의 나날이었다.

블로그 개설을 4월에 했는데 인터넷 서점 서재에 있던 글을 옮겨다 놓고 한달 넘게 그냥 보냈다.

5월이 되고 마음에도 싹이 텄는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 시작했는데 3일 만에 접고 또 3개월 가까이 흘러갔다.

그러다 글쓰기 30일 도전하는 곳을 알게 되었고, 하루 하루 마감이 있는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이렇게까지 글을 열심히 쓴 적이 없다.

그것도 매일 매일... 

한동안 나는 보상이 따르는 글쓰기 만을 해왔다. 글쓰기가 좋아서 했던 게 아니라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도전의식이 발동하였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 글쓰기로 공모전에서 받은 작고 큰 상들에 뿌듯해하며 자기만족에 오랫동안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그것마저 흥미를 잃었다. 어쩌다 글을 써달라고 청탁이 들어오면 숙제처럼 했고

일에 묻혀 지내다보니 글쓰기는 귀찮고 재미 없는 일이 되었다.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일에는 기쁨과 슬픔이 함께 동반 된다는 것을,... 일은 우리가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을 지녔다고 말이다.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라는 걸 블로그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흥미를 잃었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가슴 한 켠에선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지 빠르게 적응해갔다. 어릴 적 즐겁게 했던 일 중 하나가 사진이나 잡지의 그림을 오려붙이고 짧게 글을 쓰는 일이었다. 블로그 활동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들은 재능에 기대지 말고 글쓰기를 일처럼 묵묵히 하라고 조언한다. 나는 그동안 알량한 재능에 기대어 있었고

항상 핑곗거리를 찾다가 쉽게 무너졌다. 

글쓰기는 일이라는 공식을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그 말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밥벌이의 지겨움속에서도 밥 한숟갈의 위대함이 있듯이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다.  

 

술을 마셔도 글은 쓰고 자겠다는 의지가 생긴 것도 변화 중의 하나지만, 블로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재능과 취향, 따듯함, 개성을 통해서 알게 되는 글쓰기의 위대함은 사방으로 뻗어가는 커뮤니티의 활동성과 너와 나의 발견에 있다.

일방적 글쓰기가 아닌 서로의 글에 반응하고 응원하면서 글쓰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배웠다.

 

 

 

 

블로그를 하면서 처음에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차피 공개적인 작업이다보니 공감, 구독자, 유입자 수를 아예 신경을 안 쓸 수도 없고 글의 주제, 카테고리, 콘셉이나 글의 난이도 어투, 등에 대해서도 고민이 좀 있었다.

블로그를 하는 지인들의 조언을 듣기도 했다. 이슈를 다뤄줘야 하고 모바일에 최적화된 글을 써야 하며, 이쁜 사진에

일관된 주제가 있으면 좋고,  독자가 스트레스 안 받게 무겁거나 심각한 얘기는 피하고 가볍고 되로록이면 길지 않게 써야 한다는 등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이거 지키려다 내가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았다.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하는 글쓰기는 빨리 지치고 포기하기 마련!. 그래서 막 쓰자로 가닥을 잡았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이것저것 막 써보자 그게 콘셉이었는데 잘 한 것 같다. 딱 한가지만 지키기로 했다. 저작권에 걸리지 말자!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인용글이나 사진의 출처는 확실히 밝혀두고 왠만한 건 내가 찍은 사진과 쓴 글을 올리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쓴지 이제 100일 되었다. 구독자 수는 68명에 머물러 있지만 유입자 수는 제법 늘었다. <나의 아저씨>에 관한 글이 다음 포털사이트에 상위 노출되면서 검색 유입자 수가 늘어난 것이다. 이러다 그래프 곡선이 내려가겠지만 아무튼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다.

 

글 쓰는데 나는 어느정도 자유롭다. 프리랜서로서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을 누리며 블로그 활동을 일처럼 하고 있다.

내겐 상사, 선배, 동료는 없지만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커뮤니티의 친구들은 가득하다. 그들이 몇 살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중요하지도 궁금하지도 않다.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되면 그걸로 충분하다.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것이다. 기쁨에 대해선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차가 있겠지만 슬픔의 이유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나의 글을 남하고 비교 하면서 절망하고 의기소침해질 때

배는 고프지 않는데 꾸역 꾸역 밥을 먹듯이 글도 그렇게 쓰려고 할 때

글쓰기가 내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고 한계에 부딪칠 때

이게 뭐라고 내 발목을 잡을 때

반응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등등...... 이유도 가지가지 변명도 가지가지지만, 기쁨과 슬픔이 동반된 글쓰기의 노동으로 하루를 살아내고자 한 이상 이곳을 놀이터 삼아 즐겨야겠다. 그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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