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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앞에서 서성거리다

[영화]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캐스트 어웨이'

by 나?꽃도둑 2020.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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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영화

 

여기 정말 바쁘게 사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척 놀랜드다. '페덱스' 라는 물류회사 직원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진짜 정신 없이 산다. 시간과의 싸움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늘 시계를 보는 버릇, 정확히 움직여야 일에 차질이 없음을 몸소 보여준다. 사람들을 독촉하고 여기저기 매의 눈으로 살피고 지시하기에 바쁘다. 이 남자는 일이 우선이다. 바빠도 너무 바빠서 약혼녀 얼굴 볼 시간도 잘 없다. 크리스마스 이브 때 정말 귀한 시간을 내어 캘리와 데이트를 한다. 하지만 페덱스 전용 비행기에 탑승해야 한다는 호출을 받고 연말을 기약하고 헤어진다.

불행히도 비행기는 기상악화로 도착지에 가지 못하고 남태평양 한 가운데 추락하고 마는데...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톰 행크스 한 사람의 힘으로 이 영화는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연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퉁퉁한 몸에서 개고생 끝에 얻은 홀쭉한 몸을 표현하려고 무려 20kg가 넘게 다이어트를 했다고 하니 직업정신 또한 높이 살 만하다.

 

<캐스트 어웨이>는 일단 재밌다. 단조로운 줄거리에 평이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재밌는 건 장면마다 읽히는 메타포가 있어서이다.  조난당해 또 다른 삶을 살아본 한 남자의 이야기에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의 재현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선사시대의 삶의 방식으로 돌아간 한 인간의 삶의 고군분투가 눈물겨웠다.

 

문명의 혜택이라곤 전혀 없는 무인도에서의 첫날, 

온갖 낯섦과 두려움 투성이다. 왜 하필 그날 비가오고 번개가 치는 건지...(아,,,기상악화...) 척은 잔뜩 쫄아서 야행성 동물마냥 눈을 부라리며 주위를 살핀다.  그러다 구명보트 안에서 새우잠을 자고 툭, 툭, 둔탁한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어난다.

그리고 버럭버럭 소리친다. 이건 무서우니까 내지르는 방어이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이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척은 망연자실해져 섬을 둘러보는데 그야말로 섬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제로다.

척은 갈증도 나고 배도 고프자 주위를 둘러본다. 해안가에서 건진 택배상자를 열어보지만 먹을거라곤 하나도 없다.(희망의 상징! 송장이 붙어 있는 상자는 그대로 둔다. 이건 나중에 탈출에 성공하고 그 주소로 가져다 주게 된다. 직업정신 짱!)

 

야자수 열매가 발밑에 떨어지자 그걸 바위에 던져도 보고 돌로 내리쳐보지만 야자수 열매는 꿈쩍도 안한다. 별짓을 다해보다가 척은 구석기 시대의 조상들이 그랬듯 그 유전자의 후손답게 돌로 내리치다가 우연히 구석기 시대의 '맥가이버 칼'인 뗀석기인 주먹도끼를 얻게 된다. 그걸로 야자수, 사냥한 물고기, 나뭇가지, 천을 찟고 자르고 베고 유용하게 사용한다.

 

 

윌슨이 탄생하는 순간

 

아무리 조금씩 적응을 한다고 해도 무인도에선 살 수 없는 법! 척은 탈출을 꿈꾸게 된다.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하려고 바다로 나간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싸우다가 보트가 뒤집히면서 급기야 파도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쓸려가다 산호초에 다리를 다쳐 피를 흘리게 된다.

잠시 좌절했던 척의 삶은 곧 다시 시작된다.

주먹도끼 대신 여성용 신발인 피켜스케이트날로 자르고 찟고 치통의 원인인 이를 빼는 도구로 사용한다.

척은 나무끼리 마찰을 일으켜 불을 발견하는데 여기서 척의 유일한 대화상대인 '윌슨'이  탄생한다.

불을 만들려고 미친듯이 비비다가 그만 손바닥을 찟고 마는데 피를 보자 화가 난 척은 분풀이를 하다가 배구공을 잡고 던진다.

자신의 피로 탄생한 '배구공 윌슨'은 로빈슨 크루소의 말 상대인 '프라이데이'와는 견줄수는 없지만

대화 상대로는 훌륭했다. 마지막 탈출에서 망망대해로 멀어져가는 윌슨을 보며 척이 오열하는 장면은 윌슨이 척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말해준다.

 

 

불을 보고 열광하는, '척 놀랜드' 

 

 

 

 

 

유일한 대화 상대 윌슨

 

 

척이 미치지 않고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윌슨의 힘이다.  인간이 아무리 혼자서 무인도에서 살아갈 수는 있다고는 하지만 대화상대가 없다는 건 심각한 정신적 단절과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예전에 그런 실험을 본 적이 있다. 한 사람씩 침실 하나만 딸린 장소에 넣어두고 무얼 하는지 어떻게 되는지 보는 실험이었다. 대화 상대도 없고 전화기도 사용할 수 없고 일절 통신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시간이 흐르면서 결과가 나타났는데 폭력적이거나 자해를 한다거나 안절부절 못하곤 했었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모여서 지지고 볶고 살아야 인간다워지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몸만 건강하다고 해서 안심할 일이 아닌 것이다.

 

 

탈출을 위해 뗏목을 만드는 척 놀랜드

 

1719년 출간된 로빈슨 크루소는 28년 만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다행히 척은 4년이 지나 돌아가게 된다.

시행착오의 삶, 문명을 향해 가는 삶의 끝에는 뭐가 있는지 척은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저어 간다.

파도와 싸우고 폭풍우와 싸우고  분신이던 윌슨과 헤어지게 되고 고래를 만나게 되고 쓰러져 포류하다가 선박에 의해 구조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파란만장했던 무인도에서의 삶은 그렇게 끝나게 되지만, 캘리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슬픈 소식을 듣게 된다.

 

 

드디어 탈출을 감행하다

 

 

아무것도 없는 삶, 이적지 누려왔던 삶의 편리와 이기와 교통, 먹거리 등 삶의 방식의 판을 완전히 뒤엎고 신생아처럼 살아야 했던 무인도에서의 삶은 척에게 무엇을 깨닫게 했을까? 그의 심경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그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하는 생환만찬에서의 장면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일상으로 돌아온 안도감보다 삶의 생동감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조금 걱정되는 장면이기도 했다.

타성에 젖어 사는 삶,  시간에 쫓기어 정신없이 사는 삶, 사유 없이 사는 삶, 생동감 없는 삶

이 영화는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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