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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함양의 이곳저곳

감천문화마을을 걷다

by 나?꽃도둑 2020.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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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감천문화마을 홈피

 

 

 

일요일 오후, 감천문화마을을 가기 위해 아미동 비석마을을 지나 천천히 반달고개를 올랐다. 그리 멀지 않은 길이지만 오르막이라 한 발 한 발 천천히 숨을 고르며 가야했다. 

가는 동안 자동차와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쳐 갔다. 삶의 터전인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한데 섞여 시끌법적했다. 예전에는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길 위로 달구지, 장사치들, 마을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부산역과 자갈치 시장까지 걸어다니던 고달픈 삶의 길이기도 했다.

 

나는 길 위에서 시간여행자가 되어 감천문화마을로 들어섰다.

감천문화마을은 사연이 참 많다. 부산 산동네들은 근대사와 함께 형성되어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 이곳은 태극도라는 종교 신앙촌으로 시작되었다.

전쟁 직후 부산에는 산등성이마다 피난 온 사람들이 지은 천막과 판자촌이 즐비했다. 1953년 부산역대화재로 보수동 판잣집이 철거됨에 따라 천마산과 아미산 중턱으로 집단이주를 하였는데 지금의 감천마을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태극도마을로 불렸으며 충청도에 살던 태극도 교인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마을이 커졌다고 한다. 유입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산등성이 경사면을 따라 겹겹이 집을 짓고 미로같은 구불구불 골목이 생겨나고 가파른 계단이 생겨났다. 

한국의 마추픽추가 그렇게 탄생하였다.

 

 

 

 

 

 

출처 감천문화마을 홈피 (작은문화박물관에서 옛모습을 볼 수 있다)

 

 

 

감천문화마을은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한 공공 미술프로젝트 공모에 당선되어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로 세상에 그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 2010년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하면서 더욱 유명해져서 전국에서 한 해 찾는 관광객이 수십만명에 이르게 되었다고하니 역사성과 문화를 함께 갖추게 된 셈이다.

 

 

 

 

 

 

안내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리막과 평지, 오르막을 반복하며 산중턱을 가로지르며 난 길은 차 한대가 지나갈 정도이다.

한참 걷다보니 중심지인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길 양쪽으로는 관광객을 위한 온갖 물건과 기념품과 음식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길 위를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걷다 보니 온갖 냄새와 소리들로 어지러웠다. 어린왕자와 사막여우가 마을을 내려다보는 곳에서는 사진을 찍으려 사람들의 줄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무작정 아랫길로 난 골목으로 들어섰다. 구불구불 난 골목길을 따라 낮고 좁은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어깨를 나란히 한 집들과 집들의 어깨를 딛고 선 집들은 참으로 정겨워 보였다. 마당 한켠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텃밭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화분과 장독대는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임을 알게 해주었다. 관광객이 들끓는 곳에서의 삶도 어쩌면 피곤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되도록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조심 걸었다.

 

 

 

 

 

골목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이 이어지기도 하고 지붕 너머로 멀리 바다가 보이기도 했다. 마치 숨바꼭질 하듯 바다는 숨었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집과 집들은 서로 소통하고 길과 길끼리 이어지고 경사면을 따라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는 기가막힌 감천문화마을은 멀리서 보면 더욱 아름답다. 밝은 톤의 여러가지 색은 보기드문 색체의 조합을 보여준다.

밤의 풍경은 또 어떤까... 밤하늘의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광경을 사진으로 보고 이곳을 꿈꾸게 되었다.

 

 

 

마을에서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골목길을 유난히 좋아하는 까닭에 돌아다니다 보면 의외의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버려진 공간을 개조해 예술공간으로 거듭난 곳을 보게 되었다. 입주작가들의 공방이나 작업공간, 갤러리가 제법 있었다. 천연염색을 하는 공방인지 마당 한 가운데 있는 줄에 곱게 물든 색색의 천들이 바람결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천들은 색색의 감천마을을 닮아 있었다. 바닷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추듯 자유롭고 생명력이 넘쳤다.

 

달동네의 애환은 구차하지만 정겹고, 고달프지만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다. 골목 어디에서든 사연이 흘러넘친다. 골목에 나와 있는 낡은 의자조차도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난과 삶의 애환이 서린 곳 달동네인 감천문화마을에서 나는 오후 한때를 느릿느릿 거닐며 여기저기 기웃대며 보냈다.

달동네의 애환을 잘 그린 함민복 시인의 시를 떠올리며.... 

 

 

 

달의 눈물 / 함민복

금호동 산동네의 밤이 깊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노루들의 잠자리나 되었을 법한
산속으로 머리를 눕히러 찾아드는 곳
힘들여 올라왔던 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몸 더럽히고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숨찬 산중턱에 살고 있는 나보다
더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많아
아직 잠 못 이룬 사람들 많아
하수도 물소리
골목길 따라 흘러내린다
전봇대 굵기만한 도랑을 덮은
쇠철망 틈새로 들려오는
하수도 물소리
누가 때늦은 목욕을 했는지
제법 소리가 커지기도 하며
산동네의 삶처럼 경사가 져
썩은내 풍길 새도 없이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또 비린내가 좀 나면 어떠랴
그게 사람 살아가는 증표일진대
이곳 삶의 동맥처럼
새벽까지 끊기지 않고
흐르는
하수도 물소리
물소리 듣는 것은 즐겁다
쇠철망 앞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물면
달의 눈물
하수도 물소리에 가슴이 젖는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함민복 시집 /창작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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