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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함양의 이곳저곳

부산 흰여울 문화마을을 걷다

by 나?꽃도둑 2020.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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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영도 흰여울마을은 절벽 위에 옹기종기 해안을 따라 길게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멀리 송도와 마주하고 있다. 원래 이곳은 송도에 버금갈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이송도라 불렀다. 문화마을로 지정이 되면서 흰여울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원래 이곳에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은 이송도라 부른다.

 

두 개의 이름이 공존하는 흰여울마을은 바다 건너 멀리 암남공원, 송도와 마주하고 있고, 송도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거제도가 보인다. 맑은 날씨엔 주전자 섬 뒤로 멀리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을이 형성된 봉래산 줄기를 따라 한 고개를 넘어가면 태종대가 나온다. 해안가에 조성된 갈맷길을 따라 파도소리를 들으며 태종대까지 걸어 갈 수도 있다.

 





 

가파른 절벽 위 해안을 따라 형성된 흰여울마을 길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변호인> 영화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이곳을 찾고 있다. 이렇듯 관광객들한테는 아름다운 곳으로 인식되지만, 정작 이곳은 갖가지 사연과 애환이 서린 곳이다.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해안마을이지만 그 속사정은 남다르다.

 

처음 이곳은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5~7평 정도의 판잣집을 공동묘지 위에도 짓고, 해안 근처 까지 지었는데 두 차례의 태풍에 휩쓸려가는 비운을 겪게 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른 곳을 찾아 떠나거나 더 높은 곳을 찾아 정착했다.

비가 오면 골목마다 흙탕물이 흰 거품을 몰고 콸콸 여울을 이루며 흘러내렸다. 유독 많은 골목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길이었다고 하니 그 신산한 삶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해안가로 내려가는 계단

 

 

재밌는 일화가 있기도 하다. 배추를 소금에 절일 필요 없이 바닷물에 담가 슬렁슬렁 씻어 김치를 했다고 한다. 또 공동우물의 물이 늘 부족하여 아가씨들은 물동이를 이고 백련사 부근에 있는 샘에 물을 길러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혼자 가기 무서워 동네 총각들을 대동하고 갔다하여 그곳을 ‘연예골짝’이라고 부른다.

아찔한 이야기도 있다. 해안 쪽으로 담이 정비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공동화장실이 멀어 가파른 절벽 끝에서 엉덩이를 바다 쪽으로 돌리고 큰일을 보다가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진 올해 73세가 된 할아버지가 있다. 다행히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

 

 

 

멀리 남항대교가 보이는 골목길

 

 

흰여울마을 걷기는 맏머리샘이 있었던 곳인 맏머리계단에서 시작하여 끝샘이 있었던 도돌이 계단까지의 코스다. 가파른 절벽 위에 해안을 따라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이 길은 마을 바로 위에 큰 도로가 생기기 전까지 자전거와 손수레와 사람이 다니던 도로였다. 영도다리 쪽에서 태종대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지금은 해안 쪽으로 담장이 길게 이어져 있다. 어른 가슴 정도까지 오는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빨래와 이불을 널어놓은 정겨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길 양쪽으로 가꾸어진 꽃밭이나 텃밭도 참으로 아기자기하다. 나란히 서있는 벌건 고무대야에 심어진 호박과 상추도 싱그럽다. 골목길 한 가운데 누워 있는 개와 고양이, 골목길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들, 마을 여자들이 운영하는 흰여울점빵, 벽에 그려진 소박한 그림들, 담장을 넘어오는 파도와 골목길에 내쳐 흐르는 흰여울 그림은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있다.

 

 

 

 

과거의 이야기 위에 현재의 시간은 흐른다. 그 장소를 걸으며, 나는 많은 것들과 조우했다. 다섯 평도 안 되는 방에서 바글거리며 삶을 꾸려야 했던 사람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아이들 울음소리와 노인들의 기침 소리, 개 짖는 소리, 철썩 철썩 밀려오는 파도소리, 뿌웅 멀리 뱃고동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노인들이 마을의 일을 기억하듯, 이곳 길들도 그것을 다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의 목소리, 골목 곳곳에서 일어난 일들, 빗물이 내쳐 흘러내린 일이나 오가던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마저도 다 기억할 것이다.

골목길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나무들도 있다. 담장 아래 절벽 곳곳에는 소태나무, 뽕나무, 무화과, 아카시와 오래된 복숭아나무가 자라고 있다. 예전 같지 않지만 해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멀리 송도가 보인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할머니들이 길에 나와 오가는 관광객들을 구경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치맛자락을 날리며 지나는 아가씨들을 보면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젊음의 한때를 생각하고 있는지 짓무른 눈매에 아련함이 묻어난다.

모든 것은 흘러가기 마련, 바람결에 구름이 흘러가듯 인생도 그렇게 흘러간다. 나는 흐려진 눈으로 풍경을 담아 가슴에 쟁이며 길을 걷는다. 살아야 하는 일이 그저 견디는 일이었을 그 시절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걷고 또 걷는다. 그 가운데서도 아이들은 태어나 자라 결혼을 하고, 또 누군가는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 눈부신 풍경을 죽어서야 누렸을 것이다. 갈 곳이 없어 바닷가 산비탈에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들에게 이곳은 감상의 공간이 아니다. 척박하고 궁핍한 삶의 터전이었을 뿐이다.

 

지금의 흰여울마을은 마을 바로 위로 난 도로정비 사업과 1999년에 IMF으로 인해 실직한 사람들을 투입해 절영해안산책로 정비사업을 하면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때 만들어진 축방은, 태풍에 유실되면서 가파르게 형성된 절벽위에 있는 마을을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다.

또 하나 인상 깊은 것은 묘박지다. 남항대교를 중심으로 내항과 외항이 있는데 외항인 바다위에는 작고 큰 선박들이 여기저기 수십 척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배들은 닻을 내리고 며칠 쉬어가기도 하고, 물품이 떨어지거나, 고장이 나거나, 기름이 떨어졌을 때,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기도 한다. 일명 총알택시라 부르는 배가 필요한 것들을 싣고 내항과 외항을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흰여울마을은 밤이면 파도에 쓸려가는 꿈을 꾸어야 했던 사람들이 살던 곳에서, 이제는 창작공간으로서의 문화마을로,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의 이야기 위에 새로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바다가 잘 보이는 꼬막 집에 세를 얻어 살고 싶을 만큼 흰여울마을은 어딜 가나 매력적이다. 돌담 사이를 비집고 나와 삐딱하게 자란 꽃이나 풀조차도 정겹다. 바람결에 펄럭이는 온갖 색깔의 빨래도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싶을 때, 나는 흰여울마을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어슬렁거리며 한 나절을 보내고 가리라. 오래된 이야기를 간직한 골목길과 오래된 나무들과 눈을 맞추며 지친 삶을 내려놓으리라.

 

 

배들이 쉬어가는 묘박지를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길 정비를 하기 전의 모습이다

 

                                 🔼 황토색 우레탄으로 정비되기 전의 시멘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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