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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책] 다녀왔습니다

by 나?꽃도둑 2020.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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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알라딘 인터넷서점

 윤주희의 자서전 《다녀왔습니다⟫를 읽다가 불현 듯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일곱 살 때 네덜란드로 입양을 가야했던 그녀와 달리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2년을 할머니 집에서 살아야 했다. 처음 얼마 간은 매일 할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떼를 쓰고 울었던 것 같다. 엄마가 나를 떼어놓고 갔을 때 느꼈던 감정은 공포와 불안감이었다. 그나마 나를 예뻐해 주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에겐 있었지만 그녀는 말도 통하지 않는 금발머리의 서양인이 부모라고 나타났으니 그 충격이 오죽했을까 싶다.

 

 아이는 부모와의 애착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인데 친부모와의 단절은 극심한 공포를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

입양 갈 때 입었던 원피스를 잠잘 때도 벗지 않았다고 하니.... 끝내 그녀는 버림받았다고 여겼고 또 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우수한 성적과 날씬한 몸매 가꾸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어머니의 편애와 양아버지의 매질과 성희롱은 수치심과 죄책감을 갖게 하였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거식증 뒤로 숨어버린다. 그러고 10년 동안 거식과 폭식을 반복하게 되는데,

책을 읽는 내내 출구도 없이 나락으로 빠져드는 그 상황들이 갑갑하고 안타까웠다. 주위에 손을 뻗으면 잡아줄 수 있는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자기혐오와 학대로 만신창이가 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녀는 관심을 받지도, 이해받지도 못해 마음의 허기는 더해만 갔다. 결국 자신이 누구이며, 부모는 왜 자기를 버렸는지 알고 싶어 했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 속에 머물고 싶어 한국을 찾게 된다.

 

 그녀와 같이 해외로 입양되었다가 친부모와 가족을 찾아 한국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접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한국도, 입양되어 간 곳에서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친부모도 양부모도 온전하게 친밀감을 형성한 관계가 아니어서 그들이 보이는 태도와 감정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어느 곳에도 온전하게 속할 수 없는 사람들, 안전하게 마음과 몸을 정박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은 감히 상상 하기도 어렵다. 그저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어릴 적 부모와의 단절로 경험했던 공포라는 감정뿐이다.

세상의 전부였던 부모와 헤어진다는 것은 한 세계가 무너지고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홀로 남겨지고 버려졌다는 공포감은 실로 한 사람의 내면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 결국 그녀는 감당하지 못했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처절한 거부의 몸짓을 하게 된다. 폭식과 거식의 반복과 생각과 감정들을 철저히 억압해버리고, 스포츠로 육체를 학대하며 정신의 성장을 정지시켜버리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그녀의 글은 매우 솔직하고도 대담하다. 감추고 드러내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오래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통 속에 자신을 내던지고 바닥까지 내려간 모습을 담담하게 끈질기게 보고 있다. 나는 조금의 불편함을 느꼈다. 그녀의 고통과 마주할 용기가 부족했는지 모른다. 위가 찢어지도록 먹고 눈이 벌게지고 튀어나도록 토해내는 장면들을 차마 다 읽어낼 수 없어서 건너뛰곤 했다. 아무리 표현된 언어가 유머러스해도 현실은 잔인하고 고통스러웠을 테니까 말이다.

 

《다녀왔습니다⟫를 통해 입양아의 삶의 일부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살지 않았을 테지만, 태어나고 자라던 곳에서 갑자기 낯선 곳으로 떠나게 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터를 잡고 있던 곳에서 송두리 채 뽑혀 낯선 곳으로 내던져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체성의 혼란과 이방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열등감으로 얼마나 힘겨웠을지, 그것을 이겨내고 그 사회의 일원이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책을 통해 그들이 감당했어야 할 삶의 무게를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몇 차례 한국과 네덜란드를 오가면서 조금씩 자신을 발견해 나간다. 애증의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 결국 자신을 학대한 양아버지를 용서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는다. 자기 자신을 수용하고 사랑하게 된 그녀는 비로소 섭식장애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된다. 그녀에게 가장 놀라운 점은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는 힘든 시간을 통과했던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났다는 데 있다. 완전하진 않지만 그녀는 두 세계를 가진 것을 인정한다. 이곳에 속하기도 하고 저곳에 속하기도 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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