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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책]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나쓰카와 소스케

by 나?꽃도둑 2020.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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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알라딘 인터넷서점

 

우리나라의 독서 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두 명 중 한 명이 아예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독서량도 일 년 평균 열 권이 되지 않는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관심이 없거나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의 가치에 대해 말해봐야 소용없다. 책을 읽는 사람이 책의 매력에 빠져 들고 책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안다.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애정을 가진 사람만이 안다. 책에도 생명과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만약 책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물음이 없는 단순하고 재미없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성찰도 사유도 없는 무지막지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책은 거인의 어깨와도 같이 그 위에 올라 앉아 세상을 보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책은 세계의 모든 것이자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에 북콘서트에서 인생을 바꾼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인생을 바꿀 만큼 드라마틱한 순간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특별한 책은 있었다. 한창 사춘기를 겪던 시절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늘 옆에 끼고 다녔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는 문구를 주문처럼 외우며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벗어나려 애썼다.

책은 실제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책은 위대하다. 책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은 일방적 소통이 아니라 책과 내가 만났을 때 일어난다.

 

 얼마 전에 흥미로운 책을 하나 읽었다. 바로 판타지 소설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이다. 서점을 하는 할아버지와 둘이 살던 고등학생인 린타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학교에도 가지 않은 채 서점에 들어박혀 지낸다. 어느 날 인간의 말을 하는 얼룩고양이가 서점에 나타난다. 책을 해방시켜야 한다며 린타로를 데리고 미궁 속으로 데려가게 된다.

얼룩고양이와 린타로가 찾아간 미궁 속 인물들은 책에 대한 탐욕을 보여준다.

읽은 책의 수로 경쟁하는 지식인,

책은 줄거리 요약만 읽으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학자,

책은 소모품이므로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게 최고라고 하는 출판사 사장,

책을 읽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마음이 일그러진 책이 된 여자가 나온다.

 

탐욕은 인간을 움직이는 막강한 힘 중에 하나다. 이 인물들의 공통점이라면 각자의 방식대로 책을 사랑하는 구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책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고 이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오래된 나쓰키 서점과 할아버지 대척점에는 미궁 속 세 인물과 그들이 책을 가진 공간이 나온다. 오래된 서점이지만 책을 소중히 다루고 쓸고 닦는 나쓰키 서점과는 달리 자물쇠를 채운 유리 책장과, 독서연구소, 아무렇게 잔뜩 쌓아두고 펼쳐놓은 빌딩과 벌판이 나온다. 미궁 속 인물과 공간은 매우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수많은 책들이 책장에 꽂히고, 빌딩 창문에서 눈처럼 하얗게 떨어지고, 곳곳에 쌓이는 책의 홍수 속에서 정작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지 소설은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것에서 책의 가치를 찾는다. 반면 할아버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책의 생명과 마음과 힘을 믿는 사람이다. 린타로는 처음 할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얼룩고양이와 미궁을 찾아다니면서 조금씩 할아버지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와 말들을 이해하게 된다. 오독인지는 모르지만 할아버지의 빈자리에 느닷없이 나타난 얼룩고양이는 할아버지의 환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을 지켜나갈 2대인 손자를 위해 책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고 싶었는지도...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린타로는 진짜 책을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되고,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책의 효용성과 가치에 대해 알게 된다. 미궁 속 인물들이 자기기만과 자기논리에 빠져 책에 대해 변호하고 있을 때 린타로가 반론과 반문을 통해 진실이 아닌 것을 밝혀내는 장면은 참으로 통쾌하다.

 

 마지막 미궁에서 린타로는 ‘책에는 힘이 있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는다. 바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는 것이 책이라는 걸 알게 된다. 린타로는 답을 찾게 되자 고모를 따라 이사를 가지 않고 서점을 지키게 된다. 정말 다행인 것은 고서점을 애용하는 독자가 바로 같은 반 친구인 사요와 선배인 아키바 라는 사실이다. 정형화된 어떤 틀을 갖지 않은 젊은 학생들이 고서점의 가치와 미묘하게 어우러지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린타로에게 들려준 말은 참으로 주옥같다. 그것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니었을까? 책에 대해 혹은 독서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수많은 이론 사이에서 작가가 체험하고 구축한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나도 책읽기를 좋아해서 비교적 많은 책들을 읽었고 사 모았다. 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모든 과정에다 대입해보았다. 오직 책 읽기만을 위한 독서를 하는지 지식만을 위한 독서를 하는지 책장에 꽂아두고 보여주기 위한 장식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읽기 편한 것만 골라 편독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노예가 되거나 숭배하거나 책으로 인해 일그러지지도 않았다. 책에서 노닐고 사유하며 즐길 뿐이다. 그게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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