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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by 나?꽃도둑 2020.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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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보내주신 인생의 사계절을 보내는 이들에게 띄우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책을 잘 읽었습니다.

고백을 하자면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시큰둥했습니다. 인생의 겨울 언저리를 사는 사람의 노파심어린 잔소리이지 싶어 대충 목차만 훑어보고 밀쳐두었습니다. 삶은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글들로 도배되어 있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 취향 탓이겠지요. 그런데 자꾸 입속에서 꺼끌꺼끌한 뭔가가 굴러다녔습니다. 마치 알밥을 먹고 난 뒤 양치질을 했음에도 입 속 어딘가에 끼어 있다가 굴러다니는 날치알처럼 한 줄의 문장이 불현듯 입속에서 굴러다녔습니다.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표지에 있던 한 줄의 문장이 던지는 의문과 질문으로 인해 나는 다시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늙고 병듦에 대한 생각이 죽음보다도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타자의 죽음만을 목격할 뿐 나의 죽음은 목격할 수 없음으로,

              죽음은 나와 무관하다. 지금 살아 있기에 죽음을 알 수 없고 설령 죽는다 해도

              그 후를 우리는 알지 못함으로 죽음은 내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한 고대 철학자인 에피크로스의 말에 위안을 얻고 기대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늙음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다가옵니다. 늙음은 경험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직접적으로 부딪히게 되고 경험하게 합니다. 그것은 가끔 추하기까지 합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달라져 있습니다. 분명히 어제보다 늙어 버렸고, 어제의 추억이 있지만 다시는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라 할 수가 있을까요? 이 질문이 물리적 시간 위에서 놓여 있는 삶을 전제할 때는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돌아볼 때 가장 아름답고 강렬했던 시간에 멈춰 섭니다. 그 시간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젊은 날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삶이라 함은 물리적 시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심미적이고 추상적인 요인도 함께 녹아 있어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시간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오늘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람에게 오늘이 가장 젊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지혜를 가득 담고 있는 한 줄의 경구에서 온전하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이렇듯 의심으로 시작한 책 읽기는 총 4부로 나누어진 것 중 3부에서 눈길이 멈췄습니다. 3부는 인생의 가을을 사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들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사람답게 살았는지를 성찰할 나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빚을 갚아야 할 때라고 하였습니다. 손에 쥐었던 것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하는 계절이 찾아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뭇가지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뛰어내릴 줄 아는 낙엽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그리고 인생의 가을엔 가장 나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그 말에 공감하였습니다. 나답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유형이자, 나답게 가장 빛나는 존재로 사는 것은 내가 가장 원하는 모습이니까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질문을 던져놓고 숨을 골라야했습니다. 처음 의문을 가졌던 문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그 말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골똘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라는 뜻인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는 뜻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삶은 행위이자 마주침이라고 하신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은 누구나 오늘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의 시간은 이미 흘러가버렸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우리에게 당장 주어진 것은 오늘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 맞을 것입니다.

오늘이 모여 어제가 되고 어제는 미래와 연결되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오늘을 잘 사는 것, 나답게 살아내는 것, 사람답게 사는 것의 유일한 원칙들을 지켜낸다면 마치 우로보로스처럼 과거와 미래가 맞물려 온전한 모습을 한 하나의 형상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이러한 노력들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생의 겨울을 사는 이들을 위한 편지까지 다 읽어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그 계절을 맞이할 것입니다. 늙음에 대해 부정적이고 거의 공포에 가까운 생각들을 지녔던 나 같은 사람에게 몇 편의 편지는 정말 위안이 되었고 힘이 되었습니다.

춥고 힘든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따뜻한 외투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속과 삶의 태도에서 지펴지는 열기가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깨우침과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준 점에 대하여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은 이미 찾았다는 것을 선생님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모든 이에게 가장 아름답게 보답하는 것은 제가 매달렸던 한 줄의 문장처럼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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