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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인간 관계의 처방전

by 나?꽃도둑 2020.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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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과 나 사이』는 정신과 의사였던 저자가 파킨슨병이 찾아오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쓴 책이다. 옛 속담에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찾아오는 이가 많지 않다고 했다. 인간관계란 대다수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는 소리일 것이다.

 저자는 가깝고도 먼 인간관계를 자신의 이야기와 또 환자의 사례를 통해서 탐구한다. 인간관계에서 사람들이 왜 상처받고 힘들어하는지 살피고, 외롭지 않고 상처 입지 않는 거리를 찾는 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은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경험을 돌아보게 되었다. 친밀했던 사람과의 어그러짐은 특별하고도 생생한 체험이었다. 금세 잊어버릴 만큼 소소한 것이 아니라 지진 뒤 수십 차례 찾아오는 여진과도 같은.  

 

 그녀와 나는 책과 글쓰기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렇게 이십 년 가까이 행복한 추억을 쌓으며 지냈다.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외향적인 사람이었던 반면에 나는 내향적인 성향으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았다. 마음이 잘 통하는 한두 사람에게 집중하는 편이었다. 나는 그녀와의 관계에 집중하고 노력했다. 그녀를 완전히 신뢰했다.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고,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로 생각했다. 물론 나또한 그녀에게 그런 역할을 일정부분 하였다. 서로 얼굴 한번 붉히지 않을 만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였다. 그야말로 서로에게 결핍된 부분을 채워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계였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과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일어났다. 18년을 살던 곳에서 이사를 하면서 늘 붙어 다니던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고, 정든 곳을 떠나야 했다. 집을 팔면서 본 손해와 고립감과 불안증 등 여러 가지가 겹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녀가 보인 무관심한 태도와 무심코 던진 말은 그대로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녀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힘들다고 말했음에도 어떤 위로도 배려도 없었고,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다닌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단지 바란 건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이었는데도 말이다. 견고하다고 여기던 관계는 너무나 피상적이고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그 뒤 화해를 했지만 우리 관계는 소원해졌다.

나 스스로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그녀가 했던 말을 헤아려 내 태도를 정리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녀와, 그녀가 나를 생각하는 그 사이엔 커다란 구멍이 존재했다. 참으로 허망했다. 친밀한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와 관계에 대한 충실성, 진실성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책을 읽고 난 뒤 그때의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진짜 문제가 뭐였는지, 내 태도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내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를 말이다. 그때 가장 불쾌했던 것은 뒷담화와 배려심이 전혀 없는 자기 밖에 모르는 그녀가 보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갈등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보여준 소극적인 태도와 남 탓을 해대는 구차한 변명도 정말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너무 예민했다. 내가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도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어릴 적 경험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중학교 때 친한 친구가 세 명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은 같은 동네에 살았고, 한명은 다른 동네에 살았다. 그 친구에게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친구 사이를 이간질 하거나 뒤에서 흉을 보고 다니는 거였다. 늘 자기 얘기보다 다른 사람을 이슈로 삼아 이야기를 하곤 했다. 좋지 않았던 그 경험은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게도 했지만,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게도 했을 것이다.

 

 반면 그녀는 문제를 정면으로 직면하는 것에 취약했다. 나는 마음속이 후련해지고 투명해질 때까지 대화를 원했지만 그녀는 말을 하면 할수록 상처 받는다고 말하며 대화를 피했다. 어서 빨리 그 문제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나의 행동에 대해 따진다고 표현했다.

저자는 친밀한 관계일수록 충분히 말할 수 있어야 하고 확신을 주는 사이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서운함과 실망만 남긴 채 문제를 그대로 덮어버렸다. 결국 그녀는 그녀 생각만 하고, 나는 내 생각만 한 결과였다.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란 걸 책을 통해 알았다. 그녀와 나는 다른 성향으로 문제를 보는 관점과 해결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힘들었던 마음에 위로를 받고자 한 나와 달리 그녀는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었고 상처를 받았는지에 대해 무심했다.

깊은 공감과 배려와 관심이라는 감수성을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여긴 건 나의 착각이었다. 정말이지 한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거니와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은 큰 위안이 되었다.

 

 무엇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최적의 거리를 지키는 거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처럼, 고슴도치의 딜레마처럼. 또한 침범당하고 싶지 않은 자신 만의 공간을 지켜줘야 한다고 했다. 어쩌면 내가 그녀를 다그치면서 그녀의 취약한 공간을 침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하기보다 ‘너는 그래야 했어.’로 다그치며 숨 막히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책 읽기를 통해 사람을 대하는 내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 장에 배치된 마주치기도 싫은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 중 특히 일부러 적을 만들지는 말라는 조언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싫으면 못 감추고 얼굴에 다 드러나는 편이다. 그것에 대해 솔직하고도 정의롭다고 생각한 것도 맞다. 완벽하게 내 애기였다. 저자는 목적하는 바가 싸움이라면 티를 내라고 했다. 아니라면 최대한 예의를 갖추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옳아도 상대방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으며 바꾸려고 해봐야 오히려 사이만 나빠진다는 말도 새겨들었다.  

 

 인간은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하지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피곤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마냥 소홀히 할 수도 없다. 책에서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기대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태도와, 인간은 본디 이기적이고 나약하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이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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